성매매 강요당한 청소년, 2차 피해 노출 ‘심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2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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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양(가명·당시 16세)은 6년 전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선배 A 군(당시 18세)의 강요로 성매매를 하게 됐다. 정은 양은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A 군의 강요는 계속됐다. 결국 정은 양은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정은 양이 성관계를 대가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자발적 성매매’라고 판단했다. 법원에 넘겨진 정은 양은 수강명령 처분을 받았다.

수강명령 처분에 따라 교육시설로 간 정은 양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던 A 군을 만났기 때문이다. A 군 역시 수강명령 처분을 받고 이 교육시설에 와 있었던 것이다. A 군은 교육기간 3일 내내 정은 양을 괴롭혔다. 시설 내 다른 교육생들에게 정은 양의 성매매 사실을 얘기하고 다닌 것이다. 이 때문에 정은 양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얻어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환청 증세도 보였다. 정은 양은 길을 가다 모르는 남학생이 자신을 쳐다보면 울부짖기도 했다.

성매매를 강요한 청소년과 강요당한 청소년에게 내려지는 처분이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경우 모두 소년범으로 간주되고 법무부 소년분류심사원을 거쳐 법원에서 수강명령이나 보호관찰, 소년원 수용 등의 처분을 받는다. 문제는 이들이 3~5일간 교육을 받거나, 한 달간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서로 마주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면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가출한 수지 양(가명·당시 15세)은 다른 가출 학생들에 의해 모텔에 감금된 채 5개월간 성매매를 강요당하다 탈출해 경찰에 신고했다. 수지 양도 수강명령 처분을 받았다. 처분에 따라 교육시설로 간 수지 양은 자신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던 B 양(당시 17세)과 마주쳤다. 민지 양(가명·18)은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 C 양(19)의 협박에 의해 2016년 성매매를 하게 됐다. 성매매 사실이 적발된 민지 양은 소년분류심사원에서 C 양을 다시 보게 됐다. 심지어 민지 양은 심사원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C 양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C 양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성매매 사실을 소문내겠다”고 협박했다. 민지 양은 심사원에 있는 한 달 동안 C 양의 빨래를 대신 해줘야 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성매매 피해 상담을 받은 청소년은 2454명이다. 하지만 실제 경찰에 신고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 양(가명·17)은 지난해 가출 후 스마트폰 앱으로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면접을 보러 오라”는 한 남성을 찾아갔다. 이 남성은 돈을 주며 유사성행위를 강요했다. 윤지 양은 성매매 피해 지원센터를 찾아갔다. 센터에서 상담을 받던 윤지 양은 신고를 하면 자신도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신고를 포기했다.

성매매 청소년들을 피해자로 보고 이들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지난해 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1년 3개월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을 자발적 성매매자로 간주하는 현행 법률이 개정돼야 피해 사실을 알리는 신고가 늘어나고 성매매 예방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준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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