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시설 못찾아 집으로…‘학대 악순환’ 장애아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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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가 학대 가정으로 되돌아가

“빨리 와주세요. 아이를 때리는 소리가 나요….”

올 1월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웃집 아이가 맞고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방 안에서 윤호(가명·8)를 발견했다. 윤호의 온몸엔 피멍이 들어 있었다. “누가 때렸냐”고 물어도 윤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윤호는 지적장애 3급이다. 부모는 윤호를 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윤호에 대한 학대 신고는 이때가 세 번째였다. 2011년 ‘아기가 자지러지게 운다’며 이웃이 신고한 게 시작이었다. 부모가 한 살배기 윤호의 끼니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던 것이다. 윤호는 곧바로 영아원에 보내졌다. 하지만 세 살이 되도록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자 영아원에선 윤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아버지가 윤호의 목을 졸랐다. 이번에도 “학대가 의심된다”며 이웃이 신고했다. 아버지는 아동학대 혐의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윤호는 2013년 8월 영아 보호시설로 가게 됐다.

하지만 윤호는 지난해 12월 다시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5년간 전국의 시설 10곳을 전전하다 더 이상 옮길 곳이 없어 집으로 온 것이다. 윤호는 집에 온 지 3주 만에 멍투성이로 발견됐다.

학대당한 장애 아동들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학대를 당해도 보호시설을 찾지 못해 가정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학대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학대당한 장애 아동 389명 중 308명(79.2%)이 집으로 돌아갔다. 시설에서 6개월 미만의 보호를 받은 아동은 38명(9.8%), 6개월 이상 장기 보호를 받은 아동은 30명(7.7%)뿐이다.

학대당한 아동들은 각 지역에 마련된 ‘쉼터’나 ‘그룹홈’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장애 아동들은 이곳에 입소하기 어렵다. 이곳에선 교사 1명이 예닐곱 명의 아동과 함께 생활한다. 장애 아동이 입소하면 교사가 다른 아동을 돌보기 어려워진다는 게 쉼터 관계자들이 입소를 거부하는 이유다.

자폐 증세를 보이는 수민이(가명·8·여)는 지난해 7월 엄마의 학대를 피해 쉼터에 입소했다. 하지만 10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얌전했던 수민이는 밤이 되자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교사를 때렸다. 시설 관계자들은 공격적인 수민이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수민이가 집으로 돌아간 뒤 경찰에는 “벌거벗은 아이가 동네를 뛰어다닌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수민이는 대소변으로 범벅된 채 집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머물 만한 쉼터를 찾지 못해 지금도 집에서 지내고 있다.

전국에는 성인 장애인들이 지내는 시설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학대당한 장애 아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시설마다 교사 1명이 중증 장애인 30여 명을 돌보고 있는데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거나 분유를 먹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 장애인 권익옹호기관 관계자는 “장애 아동만 돌보는 시설이 있지만 정원이 모두 차 있어 신규 입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적장애 1급인 선호(가명·12)는 지난해 7월 한 장애인 보호시설에 입소했다가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술만 마시면 선호를 때렸던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선호를 집으로 돌려보내선 안 된다고 했지만 “도저히 아이를 돌볼 수 없다”는 시설 측의 뜻을 꺾지 못했다.

박명숙 상지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장애 아동이 학대 피해를 스스로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즉각 아동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정부가 주도적으로 장애 아동 보호 시설과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보호시설#학대#장애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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