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ICBM 발사·핵실험 않는다면” 트럼프의 신호에…北은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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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국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다음 단계(핵군축 등)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데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

A. 아니요! 그건 옳은 선택이 아닙니다.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은 북한이 청년 여러분들의 미래를 어떻게 위협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기성세대의 무능함과 편협함, 냉정한 국제관계의 역학이 맞아 떨어지면 아마도 북핵 문제는 어정쩡하게 파킹(parking) 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움직여야 하는 빚더미가 여러분들에게 대물림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선택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최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국내외의 상황은 불행하게도 이 뻔한 대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원하는 것의 ‘메우기 힘들 것 같은’ 간극을 적나라하게 알게 된 주요 행위자들이 하나 같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대충 묻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미국은 북핵문제를 대외정책 1순위에서 점차 내려놓는 모양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에 “핵실험만 하지 말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만 안하면…”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면서 내년 재선을 앞두고 중국과 이란에 관심을 집중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더욱 강화하면서 북에 대해서는 납치자 문제 해결 없이도 대화하겠다며 2중 플레이에 나선 상태구요.

지난해 2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실은 이동식발사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지난해 2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실은 이동식발사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북한에 2009년 이후 최고치인 136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우려에도 북한 시장에 쌀 가격이 안정세인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식량 지원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최근 우아한에 원유와 정제유 공급도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을 보내온 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러시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얼마나 북한에 기름을 보내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국제정세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감지한 북한도 남한을 다루고 있는 듯합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대남 민간 창구인 민경련과 민화협의 활동을 전면 중단시킨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20여 년 동안 북한 식량 위기를 가장 먼저 알리는데 공을 들여 온 법륜스님을 3일, 민간단체들의 추정으로는 해외동포 관련 루트로 방북시켜 통민봉관(通民封官·민간을 끌어들여 정부를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통일부는 17일 국제기구를 통한 91억 원 인도지원안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의 사실상 첫 단추에 속하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허용 카드와 함께 말이죠.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공단 내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 신청을 승인하고, 북측과 방북 시기를 협의하고 있다. 지난달 3일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모습.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공단 내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 신청을 승인하고, 북측과 방북 시기를 협의하고 있다. 지난달 3일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모습.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물론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를 계속 우선순위에 둘 수도 있고, 미국의 압박을 받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버릇들이기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통일부의 이번 조치가 북한을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마중물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전망을 하는 것은 최근의 상황이 과거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통적으로 수동적입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대응하고 대화하자고 하면 나섭니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실험과 ICBM 발사 실험은 국내 여론을 움직여 선거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한국과 일본을 향한 작은 도발(최근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관심은 줄어듭니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를 버리지 못하고 결정적일 때마다 북한을 지원해 제재와 압박의 국제적인 레버리지를 떨어뜨립니다. 일본은 북핵문제에 가장 강경하지만 납치자 문제 등을 이유로 북한과 대화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압박과 대화로 오락가락 합니다.
최근 각국의 움직임들은 모든 면에서 북한이 핵보유를 굳혀가면서 미국의 제재 속에 주변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아주 좋지 않은 종착역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파키스탄 모델: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암묵적이고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핵보유국이 된 국가로 분류됩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분리 독립하면서 인도와 정치 군사 종교로 대립하게 된 파키스탄은 1974년 인도의 핵보유에 대응해 핵개발에 나섰습니다. 이후 1998년 5월 여섯 차례의 집중적인 핵실험을 실시해 핵무기 제조 기술을 입증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등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에 나서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파키스탄을 반(反) 테러전쟁에 참여시키면서 제재를 완화했고 이에 따라 파키스탄은 미국의 묵인 하에 사실상의(de facto) 핵보유국 지위를 얻게 됩니다. 파키스탄은 이후 우라늄 농축 기술을 북한에 전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북한은 현재 파키스탄 모델에 따라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주장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박 박사)
양소희 우아한 사무국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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