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노혁전’ 발견…前 연대 교수 “홍길동전, 허균 작품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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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24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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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 제공
사진=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 제공
조선 중기 문신이 남긴 문집에서 400년 전쯤 한문으로 쓴 홍길동전이 발견됐다. 홍길동전이 허균(1569∼1618)이 지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애초 알려진 것과 배치되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윤석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소(芝所) 황일호(1588∼1641)가 쓴 홍길동 일대기인 ‘노혁전’(盧革傳)을 ‘지소선생문집’에서 찾았다고 24일 밝혔다.

지소선생문집은 황일호의 후손이 1937년에야 간행했는데, 노혁전은 그가 전주 판관으로 일하던 1626년에 전라감사 종사관 임게에게 이야기를 듣고 적었다고 한다. 황일호는 노혁전 앞부분에서 “노혁의 본래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니, 실로 우리나라 망족(望族·명망 있는 집안)이다. 불기(不羈·구속을 받지 않음)의 재주를 품었으며, 글에 능했다”라고 써 노혁이 홍길동임을 분명히 했다.

노혁전에서 홍길동은 도둑의 우두머리이며, 어머니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점 등에서 한글소설 홍길동전과 비슷하다. 곳곳을 떠돌며 도적질을 벌이다 조정의 추적까지 받았으나 말년에 무리를 해산한 뒤 결혼을 하고, 천수를 누렸다고 묘사돼 있다.

이 전 교수는 “노혁전은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다. 당시에 전하는 홍길동 관련 이야기를 모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길동이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실존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상당히 큰 도적 떼의 우두머리였다. 오랜 기간 홍길동이 도둑의 대명사로 쓰였지만, 1588년 무렵이 되면서 사람들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간 듯하다”고 말했다. 홍길동은 실존인물로 16세기를 전후해 이름을 떨친 도둑인데, 후대에 황일호가 떠도는 이야기를 접한 뒤 글로 남겼다는 의미.

이 전 교수는 “허균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설의 근거는 이식(1584∼1647)이 쓴 ‘택당집’에 등장하는 ‘허균은 ‘수호전’을 본떠서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데 근거한다”면서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세상에 전하는 홍길동 이야기를 바탕으로 1800년 무렵 알 수 없는 어떤 작가가 창작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허균이 썼다는 홍길동전과 현대인이 읽는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강조하며, 한글소설 홍길동전에 허균이 세상을 떠난 뒤인 숙종대(1661∼1720)의 인물 장길산이 나온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편, 이 전 교수는 내달 3일 열리는 ‘한국 고전 정전(古典正典)의 재인식: 우리가 몰랐던 홍길동전’ 학술대회에서 노혁전을 소개할 예정이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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