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아태 실세가 중국 선양에 온 까닭은?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3월 23일 18시 06분


코멘트

겉으론 평양 호텔 수리 요청… “금강산관광 재개 위한 사전 포석” 분석도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차 방남한 리종혁(가운데)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국통일연구원장.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차 방남한 리종혁(가운데)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국통일연구원장.
지난해 12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최초로 도지사 직속 남북 평화정책 자문기구를 출범했다. 이 지사가 남북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해 11월 리종혁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 부위원장 일행의 경기도 방문이었다. 이때 리 부위원장 일행은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대일항쟁기 일본의 강제동원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공동선언문을 함께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방문단의 실세는 리 부위원장이 아니었다. 대북 관계자들은 리 부위원장만큼 발언을 자주 한 송명철 아태 부실장을 실세로 본다.

아태는 한국을 상대하는 북한 기구다. 송 부실장은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데, 3월 중순 아태 고위 관계자로는 올해 들어 처음 중국 선양(沈陽)을 찾았다.

중국인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평양에 대해서는 궁금해해도 금강산은 별 관심이 없다. 금강산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주로 한국인이다. 그래서 금강산관광 사업에는 ‘항상’ 아태가 개입한다. 그러한 아태의 실세가 선양에 나와 북한 영사관 관계자까지 대동하고 중국 여행업계 관계자를 만났으니 정보기관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이때 토의된 것은 평양에 있는 한 호텔의 수리 문제였다.
금강산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북한 금강산국제려행사 홈페이지.
금강산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북한 금강산국제려행사 홈페이지.

영사까지 대동하고 중국 업체 만난 송명철

지금 당장 외국인이 묵을 수 있는 평양의 호텔 방은 800개 정도로 파악된다. 320여 개는 수리해야 쓸 수 있다. 북한 여행상품은 대개 3박 4일 일정인데, 이 가운데 2박은 평양에서 자는 것으로 짠다. 따라서 2인 1실로 해도 평양 호텔이 하루에 수용 가능한 외국인 관광객은 1600명 안팎이다. 북한 여행은 100% 중국발(發) 항공편·기차편으로 이뤄진다. 최근 북한행 항공기가 계속 만석(滿席) 운항을 하고 있어 4월부터는 주 2편인 평양-베이징(北京), 평양-선양 노선을 3편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에 호텔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송 부실장이 낡은 호텔 수리를 부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노이 노딜 이후 세계적으로 대북제재 강화가 논의되고 있음에도 평양 관광이 러시를 이루는 것은 호기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도 북한 관광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북한 여행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중국을 통해 얼마든지 북한을 드나들 수 있다.

이때 외국 여행사가 북한에 지불하는 여행 대금도 대북제재에 걸리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이 제재하는 것은 ‘뭉칫돈(bulk cash)’이다. 10여 명 단위의 관광객 대금은 상대적으로 소액인 데다 횟수도 너무 많아 그 거래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 명이 연속으로 관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금강산지역은 하루 300여 명이 숙박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60만 원을 내고 1박 2일로 그곳을 방문한다면 북한은 이틀마다 1억8000여만 원을 받게 된다. 이것은 뭉칫돈에 해당한다.

금강산관광은 한국에서 모객을 하니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송금하더라도 1차적으로는 국내 은행을 거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미국 재무부가 한국 은행들에 전화를 걸어 대북제재 사항을 준수해달라고 부탁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미 재무부는 모 은행이 준비하던 실향민 펀드도 거론했는데, 그 직후 해당 은행은 이 펀드의 판매를 취소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에스크로(escrow)’를 언급했다. 에스크로는 소비자가 지불한 대금을 은행처럼 믿을 수 있는 제3자에게 맡겨놓았다 물품 배송이나 여행 등이 끝난 뒤 판매자에게 보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에스크로는 제3자를 거치고 물품이나 서비스 제공이 종료된 후 송금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 뭉칫돈 거래는 그대로인지라 미국의 제재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강 장관이 에스크로를 거론한 것은 남북한이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기 위해 모색했다는 강한 암시가 된다.

북한은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 독점권은 이미 파기됐다는 입장이다. 현대아산 측은 북한과 거래했다 다른 해외 거래를 할 때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을까 염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소극적인 현대아산을 대신해 금강산관광을 해보겠다는 업체들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금강산관광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왕자 씨 사건은 통과의례’라고 말했던 김연철 씨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한반도 운전자론 운명은?

흥미로운 것은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다. 선양에 나온 송 부실장도 평양의 호텔 수리만 거론했는데, 이는 알아서 하라는 암시로 해석되고 있다. 송 부실장은 자신의 동선과 발언이 노출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중국인을 만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다음과 같은 의견과 전망을 밝혔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5·24조치를 해제하면 금강산관광을 바로 재개할 수 있다. 다만 미 재무부가 뭉칫돈의 북한 송금을 규제해 꼼짝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은행들과 기업들이 미국 눈치를 더 보고 있다. 북한 측은 외국인의 평양 관광은 허용되는데 한국인은 금강산관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논리를 만들어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듯하다. 조만간 문 대통령은 미국에 관계자를 보내 금강산관광을 허용해달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성공하면 한반도 운전자론은 당분간 유지되지만 반대라면 문 대통령이 모는 차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운명의 시간은 다음 달을 넘기지 않을 것 같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