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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英, 무능한 리더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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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英, 무능한 리더의 재앙

동정민 파리 특파원 입력 2019-03-21 03:00수정 2019-03-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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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고양이’다. 나가겠다고 울어대서 문을 열어줬는데 나가지 않는다.” 나탈리 루아조 프랑스 유럽담당장관의 통렬한 비판이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가결 후 3년에 가까운 시간을 돌고 돌아 브렉시트를 열흘 앞두고 겨우 도달한 지점이 브렉시트 3개월 연장이다. 아직 브렉시트 자체를 번복하는 ‘노(No) 브렉시트’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의회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이 어쩌다 이웃 국가의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됐을까.


영국은 토론과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내각제를 선택해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췄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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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국면에서 이 자랑스러운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체결한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회는 연거푸 부결시켰다. 일종의 삼권분립이다. 이 합의안에 보수당 의원 100여 명이 두 차례 연속 반란표를 던지고, 보수당 소속 하원의장이 메이 총리의 세 번째 합의안 투표 자체를 안건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당내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했다. 당론에 따라 ‘묻지 마 투표’가 자연스러운 한국 정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브렉시트를 두고 진행한 의회 토론 횟수도 셀 수 없다. 지금도 투표가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그때마다 국가의 정상에 해당하는 메이 총리도 의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할 정도로 의회 존중의 정신도 살아있다.

결국, 문제는 리더다.

지금 영국 정치권은 아무런 합의안 없이 EU와 완벽하게 이혼하자는 여당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 가급적 이별 후에도 EU와 끈끈하게 지내고 싶은 메이 총리를 포함한 보수당 내 온건파, 내심 브렉시트 자체의 번복을 기대하는 제1야당 노동당 등 3개 세력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메이 총리는 온건파의 세를 확장시키지도, 강경파나 야당을 설득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안만 고집하며 EU와 어정쩡한 합의안을 내놓으면서 아무런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브렉시트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국민에게 고백하고 되돌릴 용기도, “나를 믿고 EU를 떠나자”고 밀고 나갈 확신도 보이지 않았다.

메이 총리의 2차 합의안이 장관들마저 기권하면서 부결된 12일. BBC 앵커는 보수당 부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래도 총리가 안 물러나느냐”며 돌직구를 날렸다. 당황한 부대표가 “합의안 투표와 총리 거취는 무관하다”고 눙치자 이 앵커는 “당내 합의도 못 이끌어낸 총리가 어떻게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느냐” “내각도 통제하지 못하는 총리는 물러나야 하지 않나”라고 쏘아붙였다.

공영방송 앵커가 세 번이나 총리 사퇴를 종용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도 부럽지만, 달리 말하면 총리가 그만큼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메이 총리는 여전히 시스템에 의거해 잘 버티고 있다. 그는 “내가 물러나면 조기 총선으로 이어져 정권을 노동당에 넘겨줄 수 있다”는 협박 하나로 당내와 의회 불신임 투표를 이겨냈다. 불신임안이 부결되면 1년 동안 다시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총리 임기는 연말까지 보장된다.

영국의 정치 체제는 분명 선진적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한 대혼란은 ‘시스템은 도구일 뿐 결국 정치를 완성하는 건 사람’이라는 교훈도 새삼 일깨워준다. 리더가 고양이처럼 문을 나가지도 않고 물리지도 못하는 사이 영국 내 각국 기업과 고급 해외인력들은 이미 짐을 싸거나 짐 쌀 준비를 하고 있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u#영국#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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