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김경수 항소심 재판부 “재판불복 움직임은 문명국가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9일 1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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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댓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19일 오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드루킹 댓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19일 오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고법 형사2부 차문호 부장판사는 19일 김경수 경남도지사(52·수감 중) 항소심 첫 공판 시작 전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 향후 공정한 재판을 위해 부득이하게 말한다”고 밝혔다. 차 부장판사는 이어 재판에 임하는 입장을 이례적으로 길게 말했다.

차 부장판사는 “일각의 재판불복 움직임은 문명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재판부 판사들을 모욕하고,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는 것이다” “사법제도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재판 불복을 비판했다.

김 지사가 1심 선고 때 법정 구속되고, 항소심 재판부가 결정되자 정치권에서는 차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이 대법관으로 근무할 때 전속재판연구관으로 일한 경력을 문제 삼아 항소심 재판부를 비판하는 일이 있었다. 다음은 차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말한 재판부 입장 전문.


<재판에 임하는 입장>

먼저 이 사건에 임하는 저와 우리 재판부의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이 항소심에 접수된 이후,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각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재판 결과가 당연시된다고 예상하고, 그러한 결과는 저나 우리 재판부 판사님의 경력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와 우리 재판부를 비난하고, 벌써부터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 재판을 해오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례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문명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릇 재판이란 국회가 제정한 법률 아래에서, 법정에서 검사 측과 피고인 측이 제출하는 주장과 제출된 증거를 바탕으로 공방을 한 다음, 그러한 주장과 증거에 기초하여 함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재판의 결과는 법률, 양 당사자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방, 그리고 증거에 의하여 결정될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은 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받고 피고인의 인권은 존중되어야만 합니다. 법관은 공정한 심판으로서 활동할 뿐입니다. 법관이 결론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습니다. 법관으로서는 특정 결론을 향한 목표나 의지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법관은 눈을 가리고 검을 든 정의의 여신처럼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을 확인하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며 그 결과를 선언하는 고독한 수도자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형사소송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재판은 운동경기로 비유되고, 법정은 경기장이며, 검사와 피고인은 운동선수이고, 법관은 심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여지는 재판결과를 예단하고 재판부를 비난하는 일각의 태도는, 재판이 법률이 나 양 당사자의 법정 공방 및 증거와 무관하게 결론이 난다고 생각하거나, 판사가 그렇게 결론 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경기를 보고, 공이 골대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보기도 전에 심판을 핑계 삼아 승패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과 예단이 지속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재판부는 사건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법정에서 제시된 한정된 정보에 따라 판단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피고인이나 많은 국민들, 그리고 관련자들 중 많은 분들은 직접 이 사건을 경험한 분으로서 사건의 진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뻔하다 생각하는 결론을 미리 외치고 계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정말 그런 분들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피고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이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어떤 결론이 사실이라고 추측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결론만을 요구하는 분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이더라도, 재판이 이루어지는 이 법정이 아닌 법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비난과 예단은 무죄추정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유죄로 예단하고 엄벌하라고 재판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유죄든 무죄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무죄로 재판하라는 협박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 순수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태도는 무죄추정을 받으면서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정정당당하게 밝히겠다는 피고인의 입장과 노력을 무시하고 폄훼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인생과 운명이 결정되는 재판을 앞두고 몸부림치는 피고인을 매우 불안하고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서 피고인이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고, 문명국가에서 일어나서도 아니될 일입니다. 또한 우리 재판부 판사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는 것이며, 재판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법제도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난과 예단은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되는 가운데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방어권을 충분하게 행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피고인에 대하여 공정한 재판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재판부 판사님들은 안 그러시겠지만, 저는 법관이기에 앞서 부족한 사람인지라 하나하나의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평정심을 잃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재판부 판사님들은 물론이고, 저 또한 이 사건에서 어떠한 예단도 가지고 있지 않고, 공정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재판할 것입니다. 법관으로서 그러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고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법관으로서, 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한 상태에서 과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을 함에 있어 1심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심리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재판에서의 논란은, 그것이 저나 우리 재판부 판사님의 경력이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논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마음에, 사법의 신뢰를 위해, 그리고 피고인이 좀 더 편안하게 재판받게 하기 위해서,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재판부는 여기 검사나 변호인, 피고인과 사이에 아무런 연고관계가 없습니다. 특히나 피고인과는 옷깃조차 스치지 않았습니다. 이해 관계도 같이 하지 아니합니다. 이 때문에 현행 법제도상 저와 우리 재판부 구성원은 우리에게 배당된 이 사건을 피할 수 없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재판할 의무와 책임만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이에 반해 피고인으로서는 우리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재판부를 거부하거나 피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기피신청까지 갈 것도 없이, 저나 우리 재판부와 연고관계 있는 변호사를 한 명이라도 선임하였다면 재판부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피고인 측에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피고인 측에서는 오늘까지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피고인이 저와 우리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 추정 아래에서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고인의 그러한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하지 아니한다고 생각하거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피고인과 변호인은 지금이라도 기피를 신청하십시오. 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재판부에 대하여 같은 우려를 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기피를 신청하십시오.

검사, 피고인, 변호인은 오늘은 아니더라도 향후 재판진행과정에서 말씀드린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면 재판종결 전까지 언제든지 기피를 신청하십시오. 우리 재판부는 우리에게 그런 불공정성이 있는지 다른 재판부나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피재판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재판부로부터 재판을 받는 동안에는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는 법정 밖이 아니라이 법정 안에서 치열한 논쟁과 증거조사를 통하여 답을 찾아나가십시다. 검사도, 피고인도, 변호인도 모두 피고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의문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 법정에서 최선을 다해 주장과 증거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은 우리 재판 진행 상황을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전달해주십시오. 관련된 분들이나 국민들 중 이 사건의 진실을 아시어 올바른 결론 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검사나 변호인에게 그 증거들을 제출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법정에서 그에 대한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그래서 피고인은 물론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재판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다함께 노력합시다. 우리 재판부로서는 국민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법정 밖에 있는 증거나 주장, 논의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알아서도 안됩니다. 이 점 이해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김예지 기자 ye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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