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전 비서관 정계복귀의 의미

  • 신동아
  • 입력 2019년 3월 19일 1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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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위기 봉합, 총선 승리 위한 군기반장 될까
● 민주당 요청에 민주연구원장직 수락
● “공직 맡지 않겠다”던 말 뒤집어 부담
● 총선 인재 영입, 장기 정책 연구할 듯
● 이해찬 대표와 이해관계 맞아떨어져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구(舊)백수와 신(新)백수의 동경산책.’

중년 남성 두 사람의 일본 도쿄 산책 사진이 한동안 한국 정치판에 각인될 것 같다. ‘구’백수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신’백수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최근 두 사람 사이에 갈등설이 나돌았는데, 활짝 웃고 있는 두 사람 사진은 그것을 뒤집으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 사진을 찍어 3월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는 스스로 “백수도 아니고 백수도 아닌 것도 아닌 ‘낀’ 백수”라고 표현한 탁현민 대통령행사기획 자문위원.

이 사진은 앞으로 이들의 활동이 본격화됨을 알리는 신호탄 같다. 최근 양 전 비서관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을 맡기로 했고, 임 전 실장은 민주당으로 복귀해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게이오대 방문교수로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양 전 비서관은 조만간 귀국해 향후 활동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에 자극제 될까

탁현민 위원은 3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정철 전 비서관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진을 올렸다. [탁현민 페이스북 캡처]
탁현민 위원은 3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정철 전 비서관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진을 올렸다. [탁현민 페이스북 캡처]

양 전 비서관은 19대 대통령선거 핵심 공신이면서도 승리하자마자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외국으로 떠났다. 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그는 “4년은 방랑자이지만 문 대통령 퇴임 뒤에는 비서관을 찜해두었다”고 말하며 간간이 나온 정계 복귀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요즘 여권 상황이 그를 더는 밖으로만 돌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다.

2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급진전될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양국 정상회담은 결렬됐고, 비핵화는 안개속이다. 민생경제는 진보진영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가 추락하면서 소상공인들이 돌아서고, 20대 청년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음을 여론조사는 알려주고 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의 또 다른 핵심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으로 법정구속되면서 여권의 위기의식은 더욱 커졌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당·정·청에서 양 전 비서관만큼 ‘군기’를 잡을 만한 능력을 가진 이가 없어 보인다”며 그의 정계 복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 일종의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양 전 비서관은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 자신의 말을 뒤집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양 전 비서관과 통화한 적이 있는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의무감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민주연구원장직을 수락한 것 같다”면서 “다만 고민이 깊었던 만큼 아직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여권의 중진 의원은 양 전 비서관이 특이한 국내 정치문화의 희생양이라고 봤다.

“양 전 비서관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을 위해 가장 가까이에서 참모 역할을 한 사람이다.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당선 뒤 핵심 포스트를 맡아야 대통령을 잘 보좌할 수 있고, 대통령도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양 전 비서관은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와 견제 때문에 2년 가까이 스스로 낭인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라도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 1차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원장직 수락 오래 고민한 이유

하지만 양 전 비서관은 이미 민주연구원장직을 수락하기로 한 마당이다. 앞서의 여권 중진 의원은 양 전 비서관에게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역할을 맡는 것이라면 당이든 청와대든 소속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왕 당에서 민주연구원장을 맡기로 했으니 총선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 정책과제도 수행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새해 초부터 복귀설이 나돌았던 양 전 비서관은 3월 초 민주연구원장직을 수락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21일자 동아일보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양 전 비서관이 민주연구원장 자리를 제안받고 막판 고심 중”이라고 보도했고, 다른 언론들도 그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2월 25일 양 전 비서관은 귀국 시점과 민주연구원장직 수용 등에 대한 신동아 질문에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다 2월 28일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 그는 결국 ‘등판’을 결정했고, 3월 초 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를 만나 원장직 수락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양 전 비서관의 고민이 깊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우선 민주연구원장 자리를 맡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다. 민주연구원장직은 통상 당 대표의 최측근이 맡는 자리다. 전임 추미애 대표가 임명한 김민석 현 민주연구원장은 내년 총선 준비를 위해 원장직을 그만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의 임기는 5월 말 완료된다.

민주연구원장 자리는 누가 맡느냐에 따라 비중이 달라질 수 있는 자리다. 김용익 전 원장은 복지국가 등 장기적 국가 플랜을 마련하면서 싱크탱크 역할에 충실했다. 김민석 현 원장은 실용적 정책 전략을 추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양 전 비서관은 총선을 앞두고 인재를 영입하는 일이나 지역구 여론조사 등을 통해 공천에 힘을 행사할 수도 있다. 좀 더 큰 정치 전략 마련도 가능하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미국 사회의 장기 번영을 위한 비전과 경제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해밀턴 프로젝트 같은 대형 연구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시는 리더의 ‘세포’가 된다

둘째, 이해찬 대표와의 관계 문제다. 양 전 비서관은 지난해 민주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해 ‘이해찬 지지설’을 부인했다. 당시 양 전 비서관은 최재성 의원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언어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양 전 비서관에게 이 대표의 잦은 말실수는 간과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이 대표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문(비서)실장’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고, 올해는 장애인 비하 발언과 100년 집권론으로 역풍을 맞기도 했다.

민주연구원장직 제안을 두고서도 엇갈리는 주장이 있다. 이 대표가 양 전 비서관에게 직접 민주연구원장 자리를 제안한 것으로 여러 언론이 보도했지만, 이 대표의 측근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양 전 비서관의 복귀설이 돌자 당 안팎에서 원장직 얘기가 나왔다”며 “이 대표는 양 전 비서관이 민주당을 위해 열심히 돕겠다고 하니 당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결과적으로 민주연구원장 자리가 이 대표와 양 전 비서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교집합이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양 전 비서관을 곁에 둠으로써 당 장악력을 높이고 청와대와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어 좋고, 양 전 비서관으로선 ‘공직 거부’라는 자신의 말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도 총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양 전 비서관은 자기가 모시는 리더의 ‘세포’가 된다는 평가가 있다. 절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그림자처럼 충성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분신으로 여길 수밖에 없도록 처신해온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특성이 민주당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장 당에서 총선용 전략을 짜거나 인재를 영입할 때 청와대 개입설이 불거질 수 있다. 그런 비난을 잠재우려면 이래저래 양 전 비서관의 ‘개인기’가 다시 빛을 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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