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스몰딜은 없을 것”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2월 23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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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스몰딜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스몰딜로는 미국 의회의 검증을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안호영 북한대학원대 총장(전 주미대사·사진)은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2월 18일 ‘북·미 2차 정상회담-다시 기로에 선 북핵’을 주제로 개최한 제20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북한 비핵화의 진전 가능성을 전망했다. 안 총장은 “결국엔 북한과 미국의 선택,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방법론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 총장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30년간 갈림길서 잘못된 길 선택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른 단어는 ‘갈림길’이다.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가 평화 번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북한을 비롯한 관련 국가들이 가면 안 되는 길을 계속 가 오늘까지 온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과 한반도는 또다시 갈림길에 섰다.

1990년 3월 냉전이 끝나가는 때 주미대사관에 부임했다. 그때 워싱턴에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New International Order’, 즉 ‘새 국제질서’라는 말이었다. 그 한 과제가 핵확산 방지였다. 소련이 해체된 뒤 소련 핵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다른 공화국에 남게 됐다. 이 핵무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의 과제이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는 옛 소련연방이 해체되는 혼란기인 데다 모든 것이 부족해 미국이 적극 나섰다. 핵무기 폐기 기술은 물론 인력과 장비, 돈을 미국이 다 부담했다. 그 당시 북핵이 현안은 아니었지만 북한이 핵 보유를 추진한다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북한은 그때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고, 남한을 무시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 했지만 미국은 북한에 관심이 없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핵군축을 추진하면서 차츰 북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은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과 여러 분야에서 대화를 진행했다. 북한이 마음만 먹었으면 냉전 종식의 기류 속에서 어느 공산권 국가보다도 유리하게 개혁·개방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92년 말~1993년 초에 걸쳐 북한이 모든 대화 채널을 보이콧했다. 그 시기가 지금 보면 북한으로서는 내부적으로 핵개발 결단을 내린 때였던 것 같다.

북한은 소련의 권유로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NPT에 가입하면 1년 반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야 하는데, 북한은 거부하다 1992년에야 사찰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뒤늦게 받아들인 사찰이 문제를 일으켰다. 북한은 두 가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개혁·개방을 위해 사찰을 받기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천신만고 끝에 진행 중인 핵개발이 성과가 나고 있는데 포기하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은 보유한 플루토늄이 90g이라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10kg은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해 “검증을 제대로 하자”고 요구하니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는 당황해하면서 제네바 협상을 시작했다.

1990년대 북한은 중국이나 소련과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고립됐고 이 모든 선택의 결과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북한은 안보를 위해선 핵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으나, 궁극적으로 안보에 큰 위기를 초래하게 됐다. 안보의 딜레마인 셈이다.

북핵 위기가 시작된 이후 약 30년을 돌아보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다. 그 시기에 한국, 중국, 베트남 경제는 놀랍도록 발전했다. 그런데 북한은 숫자로 보면 30년 전 고난의 행군 직전 시기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별자리 배치가 달라졌다”

이제는 변화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몇 가지 상황이 변화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먼저 북한의 잇단 핵실험에 대해 유엔의 제재가 이어졌다. 2016년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를 시작으로 북한에 대해 품목별 제재가 시작돼 석탄, 철광석, 수산물 등의 수출이 제한됐는데 그해 약 30억 달러(약 3조3670억 원)의 수출액 중 25억 달러가량이 영향을 받았다.

워싱턴의 대북 인식도 중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화 제스처를 취하지만 행정부와 백악관 실무자들은 굉장히 강경하다. 이런 기류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의회는 더 강경하다. 2016년 대북제재 관련법이 처음 제정될 때 상원에서 98 대 2로 통과됐다. 학계는 물론 일반 시민도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 시카고 국제문제위원회(CCGA)의 한 여론조사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지지율이 78%로 주일미군 68%, 주독미군 60%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는 핵개발 등으로 북한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 때문이다.

1월 31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에서 강연할 때 대담자였던 북한 전문가 밥 칼린은 이런 말을 했다. “별들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유리하게 배치된 적이 없었다”. 과장이 아니다 싶다.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하는데 그 진정성은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비핵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회담이 잘 진행되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제대로 된 비핵화 방안은 전체 로드맵이 한미가 이해하는 진정한 비핵화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제대로 된 신고와 검증이 보장되는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결국 북한과 미국의 선택,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방법론이 제대로 돼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상당히 시간에 쫓겨 진행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벌써부터 북한 비핵화에 대해 빅딜이냐, 스몰딜이냐 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표현이 어떻든 이번에 이뤄내는 합의는 비핵화 의지가 달성되는 딜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비핵화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빅딜이다. 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없애는 선에서 합의한 뒤 대북제재를 해제하면 스몰딜이 된다. 하지만 스몰딜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는 미국 의회의 검증을 도저히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비건 대표도 잘 알고 있을 테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7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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