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담 코앞인데, 北-美 ‘비핵화 개념’조차 합의 안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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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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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고위 당국자, 핵폐기서 동결로 후퇴… 스몰딜 우려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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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freeze)’.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미 고위 당국자가 불쑥 내놓은 이 한 단어가 회담 의제 및 성과에 대한 전망을 흔들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했는지 아직 모르겠다”는 발언과 함께 이번 회담의 목표가 핵 폐기가 아닌 동결 수준의 ‘스몰딜’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 핵 폐기 앞선 CVC의 중간단계


미 고위 당국자는 21일(현지 시간) 기자들과의 전화 브리핑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1월 스탠퍼드대 강연 내용을 재차 인용하는 방식으로 이번 회담의 의제를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이 나왔다. 그러나 막상 비건 대표의 강연 중 실제로 ‘WMD’와 관련해서는 제거 혹은 폐기, 파괴 등의 단어만 나왔을 뿐 ‘동결’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이런 그의 발언은 강연 내용에는 없었던 동결이 이번 하노이 회담의 의제로 올라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미국 협상팀이 궁극적인 핵무기 및 프로그램의 폐기에 앞서 ‘동결’이라는 중간 단계를 설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단기간에 이루기는 어려운 만큼 보다 현실적인 접근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

비건 대표에게 정책적 조언을 해주고 있는 이른바 ‘카네기 팀’이 제안한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한 봉인(CVC·Comprehensive Verifiable Capping)’과도 같은 맥락이다. ‘카네기 팀’을 이끄는 토비 돌턴 카네기국제평화기금 핵정책연구소장은 2020년까지 핵무기와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게 동결하는 개념의 CVC 전략을 취하도록 비건 대표에게 제안했다고 본보에 밝힌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의 운을 띄우며 장기전을 시사하는 동시에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기대치를 낮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워싱턴 조야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완전한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려나고 영변의 핵시설 동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폐기 수준의 ‘스몰딜’에 그칠 경우 결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까지도 비건 대표가 영변 핵시설 폐기는 물론이고 북한이 취할 ‘플러스알파’ 조치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당초 기대보다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 여전히 알 수 없는 北의 비핵화 의지

협상에 관여해온 고위 당국자가 정상회담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아직도 담보되지 않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서도 “이번 회담에서 ‘공유된 인식(shared understanding)’을 진전시킬 것”이라며 여전히 북-미 양측의 인식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이에 주목하면서 하노이 회담에서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당국자들이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북한과의 대화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가 불분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비핵화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양측이 합의한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비핵화를 위해) 매우 빠르고 통 크게(in big bites)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지금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 와 있고, 우리는 북한이 그렇게 할 모든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2차 북미 정상회담#비핵화#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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