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나머지 직원만 팀회의” 직장 내 괴롭힘? 법적으로 인정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1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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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마친 뒤 금융기관에 복직한 A 씨는 얼마 후 우울증을 앓다가 퇴사했다. 원래 창구에서 수신 업무를 담당하던 A 씨에게 복직 이후 주어진 일은 창구 안내와 보조업무였다. A 씨를 빼고 나머지 직원들만 모여 회의를 열기도 했다. 모두 이 회사 전무 B 씨의 지시였다.

의류회사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C 씨는 팀장 D 씨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C 씨가 수차례 디자인 시안을 보고했지만 D 씨는 “이번 시즌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B 씨와 D 씨의 행동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고용노동부가 21일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B 씨의 행위는 명백한 괴롭힘이지만 D 씨의 행위는 괴롭힘이라고 보기 어렵다. D 씨의 행위는 업무상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용부는 지난해 말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포함됨에 따라 이날 괴롭힘의 정의와 예방활동, 해결 절차 등을 담은 표준안을 선보였다.

법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려면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 △업무상 필요하지 않거나 사회통념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키는 행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만약 후배에게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경위서를 쓰게 했다면 3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돼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 된다.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부여하거나 △휴가나 복지 혜택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부서를 옮기도록 하는 행위 등도 직장 내 괴롭힘에 속한다. 업무상 필요한 비품을 주지 않는 것도 괴롭힘에 포함된다.

하지만 인사 승진을 위해 A등급의 근무평가가 필요한데, 상사가 계속 B등급을 부여한다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 평가자의 정당한 업무 범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업장뿐 아니라 사내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 발생한 경우도 해당한다. 또 파견·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적용된다. 만약 원청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 사이에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원청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조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7월 16일부터 시행된다. 10인 이상 노동자가 있는 기업은 새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을 바꿔야 한다. 취업규칙에는 △사내에서 금지하는 괴롭힘 유형 △예방교육 사항 △괴롭힘 사건의 처리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재발 방지조치 등을 담아야 한다. 이를 취업규칙에 반영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만약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처럼 최고경영자가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될 경우 감사가 조사를 하고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에 모든 괴롭힘 유형을 다 담을 수 없어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급한 업무가 아님에도 직장 상사가 매일 자정에 전화해 다음 날 업무지시를 한다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고용부 관계자는 “같은 행위라도 괴롭힘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구체적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누구든지 피해 사실을 회사에 신고할 수 있도록 표준안에 익명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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