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라거펠트 “땅에 묻혀 썩는 건 끔찍해…장례식 없이 화장해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1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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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대로 화장한 뒤 모친·동성연인의 골분과 섞어 뿌려질 예정
생전 인터뷰에서 “유해 때문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소신 밝혀
파리 샤넬 본사 건물 앞에 ‘백장미’ 놓고 가는 추모객 줄 이어

20일 프랑스 파리 샤넬 본사 입구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를 라거펠트를 추모하는 이들이 놓고 간 백장미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전날 별세한 라거펠트는 늘 뒤로 묶은 백발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파리=AP 뉴시스
20일 프랑스 파리 샤넬 본사 입구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를 라거펠트를 추모하는 이들이 놓고 간 백장미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전날 별세한 라거펠트는 늘 뒤로 묶은 백발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파리=AP 뉴시스
“죽은 뒤 땅속에 묻혀 썩어가고 싶지 않다.”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86세로 별세한 독일 출신 패션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유해가 장례식 없이 화장(火葬)된다.

샤넬과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고인이 198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설립한 패션업체 ‘카를 라거펠트’ 대변인은 20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라거펠트의 유언에 따라 화장 후 골분(骨粉)은 모친 엘리자베스(1897~1978), 동성 연인 자크 드바쉐(1951~1989)의 골분과 섞여 함께 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골을 뿌릴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라거펠트는 “내 골분과 섞어 뿌리기 위해 바쉐의 골분 일부를 비밀 장소에 보관해 뒀다”고 밝힌 바 있다. AFP는 “바쉐가 19세 때 그와 사랑에 빠진 라거펠트는 악명 높은 색골 파티광 바쉐가 라거펠트의 라이벌 이브 생 로랑(1936~2008)과 바람을 피웠음에도 그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순간까지 극진히 돌봤다”고 전했다.

라거펠트는 2015년 TV에 출연해 “원시림의 동물처럼 사라지고 싶다. 유해 때문에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2017년에는 프랑스 록 가수 조니 할리데이의 성대한 장례식에 대해 “공포스러운 사태다. 유가족들이 고인의 유지를 거슬러 우스꽝스러운 행사를 치렀다”고 비판했다.

파리 샤넬 본사 입구에는 라거펠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백발을 연상시키는 백장미를 놓고 가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미국 패션전문지 보그의 애나 윈투어 편집장은 “라거펠트는 군계일학(a giant among men)이었다”며 “그는 눈부신 동시에 사악했고, 늘 유쾌했으며, 한량없이 자애롭고 친절했다”고 애도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의상디자이너협회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글렌 클로스는 “1996년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을 촬영하며 라거펠트를 처음 만났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열정적으로 디자인하는 모습이 감명깊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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