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처우 개선 외면하는 서울대… ‘무기계약직 전환 금지’ 내부문건 작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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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대서 ‘지침’ 만들어 배포
한국어 강사 6개월마다 계약 갱신, “무기계약 대상” 정부 해석과 배치
노조 “비정상적 고용 개선” 촉구… 학교측 “무조건 전환금지 아니다”

서울대의 한 단과대가 비정규직 직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금지하는 내부 문건까지 작성해 지침으로 내리는 등 학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는 “학교 측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고용계약을 고수하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자연과학대는 지난해 11월 20일 ‘자연과학대학 행정실 간접비직원 무기계약 전환 기준’ 문건을 만들어 단과대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본보가 이 문건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해당 공문에는 ‘(비정규직의 경우) 무기계약은 정년까지 원칙적으로 전환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년 넘게 근무한 계약직 근로자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한 현행 비정규직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조치다.

현재 서울대 직원 3000여 명 중 정규직은 3분의 1인 약 1000명이다. 나머지는 무기계약직 또는 비정규직이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이 보장되지만 정규직보다 임금과 복지 등 처우가 열악하다. 비정규직은 고용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측은 “무기계약직 전환 심사를 할 때 위원회를 거치라는 것이지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등에 따르면 학교 측은 위 지침을 근거로 비정규직 직원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해 왔다.

학교 측은 해당 공문을 배포한 뒤인 지난해 11월 29일 비정규직 행정직 직원 A 씨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학교 측은 당초 A 씨에게 “구성원과의 화합에 문제가 있다”는 사유를 댔다가 노조가 항의하자 “성과 평가가 낮다”고 말을 바꿨다고 한다. 노조 관계자는 “학교 측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안 해주려고 합당한 사유도 없이 근무한 지 2년이 되기 전 해고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노조의 항의가 계속되자 “A 씨 채용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서울대는 비정규직 직원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서울대는 언어교육원에 근무하는 한국어 강사들을 시간강사로 간주해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시간강사는 강의한 시간만큼 수당을 받는 비정규직 신분이다. 학교로선 최저임금을 지급할 때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달 이 한국어 강사들에 대해 “시간강사로 볼 수 없어 2년 넘게 근무 시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서울대는 기숙사에서 행정업무와 학생 지도를 담당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도 ‘전문계약직’으로 채용해 매년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 통상적으로 전문계약직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이나 상위 25% 소득자를 고용할 때 맺는 계약 형태다.

김하경 whatsup@donga.com·강동웅 기자
#비정규직#서울대#무기계약직#내부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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