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평양 연락사무소 카드로 北에 ‘체제보장-관계정상화’ 손짓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북-미 2차 정상회담 D―7]가시화되는 연락사무소 설치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상응 조치로 북-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미국 내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현지 시간) 워싱턴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북-미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이른바 ‘25마일(약 40km) 룰’에 묶여 있는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검토 중이다. 미국의 미수교 국가이자 적성국가인 북한 외교관들은 현재 주유엔 북한대표부 사무실에서 반경 25마일 이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다른 도시를 방문하려면 미 국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한 규정을 풀려고 하는 것은 원활한 소통은 물론이고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미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이날 미국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미국의 준대사관(quasi-embassy) 역할을 하는 연락사무소를 열고 고위 외교관을 파견하길 원하고 있으며, 이에 상응해 북한이 미국에 특사를 파견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미 의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독자적 권한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북-미 관계 개선 조치로 꼽힌다. 게다가 ‘연락사무소 설치’는 북-미 양국 모두에 나쁘지 않은 카드라는 게 중론이다.

평양에 설치될 미국 연락사무소는 일종의 ‘인질’로 북한 체제 보장 및 전쟁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의 큰 틀을 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 이를 실행할 상시적 연락 채널을 구축할 수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체제 안전 보장’을 원하는 북한에 ‘당근’으로 작용할 것이고 미국은 ‘연락사무소 카드’로 영변 관련 핵 폐기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열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뿐 아니라 미국의 독자 제재를 일부 면제하는 등 ‘제재 완화’가 따라올 수밖에 없어 일석이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 위해 에너지(전력), 건설 자재, 기술 장비 등 기타 물품을 북한에 직접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락사무소 설치 장소로 워싱턴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수도라는 상징성이 있고, 연락사무소의 취지에 맞게 국무부 라인을 통해 북측과 소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 대표부 인력을 그대로 전환하면 된다”라며 뉴욕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7, 28일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잘 진행돼 연락사무소 개설에 최종 합의하면 곧바로 운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워싱턴에 신규 사무소를 개설할 때 필요한 비용 부담을 피해갈 수도 있다. 외교소식통은 “연락사무소 설치는 장기적으로 북-미 수교를 통한 관계 정상화까지 염두에 둔 초기 조치인 만큼 북한이 초기에 유엔 대표부를 활용하더라도 결국 워싱턴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역사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표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명문화했다. 당시 미국은 평양에 있던 독일대표부 터를 임차하고, 북한도 워싱턴에 설치할 연락사무소 후보지를 물색했지만 그해 연말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미군 헬기 격추 사건 이후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후에도 논의가 이어졌지만 1998년 대포동미사일(광명성1호) 발사로 중단됐다. 2000년 10월에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했던 조명록 북한 제1부위원장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등과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논의했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이지훈 기자
#평양#체제보장#관계정상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