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영식]토르티야는 건드리지 말라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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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장
김영식 국제부장
노다지의 꿈을 안고 1905년 ‘애니깽’(에네켄·Henequen·용설란의 일종) 농장으로 향했던 멕시코 이민자들의 후손을 만난 적이 있다. 유카탄반도 메리다 지역에 거주하던 애니깽 이민자의 후손 율리세스 박은 자동차 매연검사장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다. 2004년 12월 그의 집에서, 토르티야를 처음 접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서양식 만두피인 토르티야에 대해 했던 말이다. 그는 “토르티야는 멕시코인의 동질성을 상징한다”고 했다. 잘사는 사람들은 토르티야에 고기를 넣지만, 가난한 이들은 콩을 넣어서 먹는다고 했다. 고기와 콩이 빈부에 따라 기계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모두가 토르티야를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멕시코 위정자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토르티야 가격만큼은 절대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남미 좌파의 거두이던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의 정권을 잡았던 계기는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당시 정권이 버스 요금을 예고도 없이 2배로 인상해서 벌어진 시위의 확산이었다. 1989년 2월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 조치에 따라 석유 가격을 인상하자 버스 소유주들은 버스 요금을 100% 인상했다. 수도 카라카스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위성도시 과레나스에서 출근하려던 노동자들은 예고 없는 버스 요금 2배 인상에 항의했고, 이는 폭동으로 번졌다. 당시 정치군인으로 인기를 얻은 차베스는 1999년 권좌에 올랐다. 그는 2000년대 중국 경제 성장에 따른 유가 고공행진 덕분에 원유를 비싼 값에 팔면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을 펼칠 재원을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을 국영화하고 가격과 환율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서 경제는 망가졌다. 차베스의 권력을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는 또다시 저유가의 공포를 마주했지만 포퓰리즘 정책을 버리지 못했다. 인위적 가격 왜곡과 원유에만 기댄 정책은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 0.5볼리바르였던 커피 한 잔 가격은 1년 만에 1억8000만 볼리바르로 뛰어올랐다. 우리 돈으로 500원 남짓한 돈이지만 현지에선 커피 한잔하기가 어렵다. 일상생활이 사라지자 시민들은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대통령을 자처하면서 베네수엘라 정국은 ‘한 나라 두 대통령’의 혼란에 빠졌다.

경제 위기로 인한 국가적 위기 조짐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은 지난달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2배로 인상했다. L당 1.5달러였던 휘발유 가격이 하룻밤에 2배가 넘는 3.31달러로 급등하자 시민들은 도로를 점거한 채 항의 시위를 벌였다.

수단 하르툼에서 약 400km 떨어진 북동부 도시 아트바라에선 지난해 12월 19일 시작된 ‘민생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보조금 폐지로 빵 한 덩어리 가격이 1SDP(수단파운드·약 23원)에서 3SDP로 오르면서다.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맞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다가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진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이 여전히 남미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서 목격되는 것이다. 경제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게 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가격과 환율을 통제하다가 결국 국민적인 먹거리나 생활 유지에 필수 요소인 교통비까지 건드린 셈이다.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둔 우리도 행여 정치적 목적으로 선심성 공약을 뒷받침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건 아닌지 미리부터 조심하고 돌아볼 일이다. 그 이후의 선거도 마찬가지다. 국민 생활의 마지막 보루인 ‘토르티야’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
#베네수엘라#국가적 위기#재·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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