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형준]싸우면 둘 다 벌주는 일본… 최악 상황서 답 찾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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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1460년경 일본 지방영주 ‘다이묘(大名)’들은 천하를 얻기 위해 매일같이 싸웠다. 무사정권 ‘막부(幕府)’는 해결을 위해 겐카료세이바이(喧화兩成敗)법을 만들었다. 원인과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싸우면 양측 모두를 똑같이 벌주는 것이었다. 이 법은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 때 관습법으로 바뀌었다가 근대에 사라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법이지만 약 400년간 유지됐다. ‘법을 만들면 꼭 지켜야 한다’는 일본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에는 법이 있어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이를 지키지 않고 참지 않아도 된다는 정서가 없지 않다. 그게 정의라고 믿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정권과의 대결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을 앞세운 사회 변혁의 흐름을 타고 등장했다. 한국인에게 싸움은 상대방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충돌하기 쉽다. 요즘의 한일 갈등 뒤에도 달라도 너무 다른 양국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 위안부 문제를 보자. 일본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본다. 즉 ‘합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다르다. 법적으론 끝났을지 몰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해결된다고 본다. 지속적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다. 일본 측이 한국 문화를 무시하고 “끝난 문제를 왜 다시 꺼내느냐”고 한다면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상생(相生)’의 의미도 완전히 다르다. 일본은 교섭을 잘 이뤄내기 위해 반드시 사전조율을 거친다. 바로 ‘네마와시(根回し)’다. 미리 상의해 공감대를 만들기에 당사자들끼리 목소리를 높여 싸울 일이 적다. 양측 의견충돌이 꾸준히 일어나면 어떨까. 일본인은 “모이이(もう良い·이제 됐어)”라며 관계를 포기한다. 현재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모이이’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연두교서, 일본 정부의 방위백서 등에선 한국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모습까지 보였다.

한국에선 다투는 양측이 모두 밑바닥까지 떨어진 후에야 상생을 도모하는 기질이 있다. 화섬업계의 단골 분규업장에서 노사 상생의 표본으로 바뀐 코오롱 구미공장을 보자. 2008년 이웅열 당시 코오롱 회장과 김홍열 노조위원장을 취재했을 때 둘은 똑같은 말을 했다. “노사 모두 ‘이렇게 싸우다 공장 문 닫고 죽겠구나’ 싶어야 힘을 모은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본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우회적으로 한국 때리기에만 몰두한다면 앞으로도 상황은 달라지기 어렵다. 일본 외무성은 최근 미국, 유럽연합(EU) 등에서 “북한 비핵화는 믿을 수 없다”며 한국 정부의 북핵 해결 노력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東京) 분쿄(文京)구민센터에서 ‘지금 왜 탈(脫)대일본주의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을 일본 정부가 유념해서 봤으면 좋겠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 타국에 대한 존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부산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상처받은 분들이 ‘더 이상 사죄는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 국민의 감정을 읽을 줄 알았던 그의 마음이 바로 이 시점 한일관계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것 같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한일 갈등#일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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