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혁명과 위기 사이… 정규직 없는 시대가 가져올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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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새라 케슬러 지음·김고명 옮김/352쪽·1만6500원·더퀘스트

이미 ‘긱 경제(gig economy)’는 거스를 수 없을지 모른다. 얽매임을 거부하는 신세대와 초 단위로 변하는 기술의 진보가 만난 이상, 전통적인 직장의 개념은 낡은 유물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구조가 모두에게 밝은 미래만 보장할까. 어떤 이는 커피숍에 앉아 몇 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금전적 수익을 얻겠지만, 누군가는 하루 종일 달려도 최저임금 이상 벌기 어려울 수도 있다. ‘노동의 유연성’은 모두를 위한 지니의 주문이 결코 아니다. ⓒshutterstock·더퀘스트 제공
이미 ‘긱 경제(gig economy)’는 거스를 수 없을지 모른다. 얽매임을 거부하는 신세대와 초 단위로 변하는 기술의 진보가 만난 이상, 전통적인 직장의 개념은 낡은 유물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구조가 모두에게 밝은 미래만 보장할까. 어떤 이는 커피숍에 앉아 몇 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금전적 수익을 얻겠지만, 누군가는 하루 종일 달려도 최저임금 이상 벌기 어려울 수도 있다. ‘노동의 유연성’은 모두를 위한 지니의 주문이 결코 아니다. ⓒshutterstock·더퀘스트 제공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꿈꾸지 않을까. 조직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그런데 조만간 이런 ‘선택’의 옵션조차 사라질지 모른다. 모두까진 아니라도 대다수가 프리랜서나 자영업자가 되는 세상. ‘긱 경제(gig economy)’의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긱 경제란 전통적인 정규직과 달리 임시직이나 프리랜서가 주를 이루는 경제 구조를 일컫는다. 당연히 자기 사업이나 가게를 하는 이들도 포함되지만, 이 용어는 그보다는 새로운 근로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독립계약자’다.

독립계약자는 글로벌 차량공유업체 ‘우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우버에서 실제로 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그들의 직원이 아니다. 개인사업자로서 우버와 계약을 맺은 신분이다. 때문에 본사의 지시를 따를 필요도 없고, 근무 시간이나 방식도 맘대로 정할 수 있다.

우버 이후 ‘청소계의 우버’ ‘배달계의 우버’ 등 숱한 분야에서 비슷한 형태의 스타트업이 쏟아졌다. 대다수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출발한 이들이 꿈꾸는 장밋빛 미래는 자명하다. 더 이상 숨 막히는 직장에 얽매이지 마라. 자유롭게 일하고 원하는 대로 쉬라. 긱 경제는 혁명적 대안이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스타트업 전문기자로 활동해 온 저자는 여기에 단연코 제동을 건다. 분명 대세는 거스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경제구조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전문가들에겐 독립계약은 꽤나 ‘짭짤한’ 노동방식이 될 수 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도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일부’일 뿐이다. 학력이나 경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거기서도 도태됐다. 요령을 터득한 이들조차 일감을 따내려 하루 종일 컴퓨터나 휴대전화란 ‘족쇄’에 발목 잡힌다. 심지어 복지 혜택도 없는 데다, 해고(이 관계에선 ‘퇴출’이라 부른다)까지 쉽다. 이름과 업종만 다를 뿐, 우리네 프랜차이즈 가게들의 한숨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기업들이 다 나쁘단 뜻은 아니다. 좀 더 나은 수익과 지원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업체도 많다. 미국의 한 청소공유업체는 아예 직원을 정식으로 채용하고 스톡옵션도 줬다. 노동자가 일터를 옮길 때마다 따라 움직이는 사회보험 프로그램인 ‘이동형 복지’를 만드는 곳도 적지 않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건 정부와 기업, 시민들이 이런 구조의 변화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서둘러야 한단 점이다.

“긱 경제는 한때 그 창조자들이 상상했던 것과 달리 ‘노동의 미래’에 대한 주문형 개선책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의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전망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수고를 기울여야 할지 고민한다면, 긱 경제가 현실의 생생한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직장이 없는…’은 끝내준다. 뻔한 경제서적의 외피를 썼지만, 공들인 취재를 바탕으로 긱 경제의 속살을 제대로 파헤쳤다. 뭣보다 숫자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인간미가 물씬하다. 원서의 부제인 ‘직업의 종말과 노동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차고 넘친다. 그나저나 정말 세상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새라 케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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