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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두 나라 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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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두 나라 두 소송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19-02-13 03:00수정 2019-02-13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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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강제징용 소송 全合 회부처럼, 일본에서 최고재판소 장관 요구로
오사카공항 소송, 대법정에 회부돼… 논란 있었으나 불법의식은 희미해
사법행정과 남용 사이 회색지대 넓어
송평인 논설위원
야마모토 유지라는 마이니치신문의 베테랑 법조기자가 쓴 ‘일본 최고재판소 이야기’란 책이 있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다. 최근 다시 보면서 오사카공항 소송이 눈에 띄었다. 1975년 그 소송이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에 회부되는 과정이 양승태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소송의 전원합의체 회부가 추진된 과정과 비슷하다.

오사카 이타미(伊丹)공항을 오가는 항공기의 굉음에 대해 ‘조용한 밤을 돌려달라’고 인근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오사카 고등재판소는 주민들의 야간비행 정지 요구를 받아들였다. 소음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명하는 걸 넘어 소음을 제거하기 위해 항공기 비행 자체를 금지한 판결은 처음이었다. 환경권을 우선시한 오사카 고등재판소의 획기적 발상은 세계로부터 주목받았다고 야마모토 기자는 썼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은 당시 오카하라 마사오였다. 오카하라는 오사카공항 소송을 최고재판소 소법정에 놔뒀다가 오사카공항이 항공기도 오가지 못하는 비(非)문명지대로 추락할까 걱정했다. 그래서 사건이 배정된 제1소법정의 재판장을 불러 “사건을 대법정으로 돌리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기자의 취재 내용이고 오카하라 본인은 “혹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에도 우리나라 대법원의 소부(小部)처럼 3개의 소법정이 있다. 사건은 일단 재판관 5명으로 구성된 소법정에서 다루고 소법정이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재판관 15명으로 구성된 대법정에 회부한다. 오사카공항 소송은 이미 제1소법정이 구두변론 등 심리를 모두 끝내고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중대한 사건이라고 해도 소법정에서 대법정에 회부하는 건 심리를 끝내기 전이다. 결심까지 끝낸 사건을 대법정에 회부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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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하라 장관이 말했어도 재판장이 딱 잘라 안 된다고 했으면 대법정 회부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재판장은 오사카공항 소송이 지닌 중요성을 고려해 제1소법정에 속한 재판관들을 불러 대법정 회부를 논의했다. 결국 병으로 요양 중인 재판관 1명을 빼고 4명 중 3명이 회부에 찬성해 사건은 대법정에 회부됐다. 제1소법정의 평의는 오사카 고재 판결을 지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기자가 비밀인 평의 내용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법정에서 6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판결은 뒤집히고 말았다.

야마모토 기자는 이 에피소드에 ‘대법정 회부의 모략(謀略)’이라는 제목을 달고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는 일본 정부와 오카하라 사이의 내통(內通) 의혹까지 제기한다. 오카하라가 대법정 회부를 부탁한 시점과 일본 정부 법무성이 대법정 회부를 요구한 시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마모토 기자에게 오카하라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인식은 희미하다. 모략이니 내통이니 하는 것도 법조 윤리에 비춰 문제가 있다는 의미에서의 모략이고 내통이다.

오사카공항 소송은 일본 사법사에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에서도 이 사건의 내막을 기억하는 일반인은 거의 없는 듯하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는 오사카공항 소송이란 항목이 있지만 야마모토 기자가 기록한 그런 내막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 내막은 일본 법조기자의 기억에나 남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나라 검찰은 그런 혐의를 모으고 모아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기소했다.

흠결 없는 사법행정과 불법적인 남용 사이에는 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이항(二項) 대립을 좋아하는 원리주의적 판사들에게 그런 회색지대는 생각하기 성가신 영역이다. 그들에게 블랙리스트는 형법적으로 불법인 블랙리스트거나 블랙리스트가 아니거나밖에 없다. 3000명이나 되는 법관 중에서 대외적 의견 표명이나 동료 판결 비판을 통해 논란을 자초한 법관의 면모를 대법원장이 알 필요가 있다는 인식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대법원장이 구속될 정도의 대단한 재판 거래라면 그래서 그가 얻은 건 뭔가라고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물을 것이다. 상고법원은 얻지도 못했다. 겨우 판사들 해외 파견 자리 몇 개 얻자고 그 짓을 했다는 말이 된다. 이건 뭐지? 외국인은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베네수엘라처럼 기괴한 나라가 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강제징용 피해자#일본 최고재판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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