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기 길에 버린 게 너무 아파”…4·3 수형인들 기구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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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17일 14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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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억울한 옥살이’ 제주 4·3 수형생존인에 무죄 판결

4·3 생존 수형인들이 17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 참석을 위해 제주지방법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2019.1.17/뉴스1 ⓒ News1
4·3 생존 수형인들이 17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사건 선고공판 참석을 위해 제주지방법원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2019.1.17/뉴스1 ⓒ News1
“4·3 당시 아기를 업고 다니다 이유없이 잡혀가 아무 설명도 없이 배에 태워져 가던 중 아기가 죽고 그 죽은 아기를 목포 길거리에 두고 온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파”

70년 전 전주형무소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4·3 수형생존인 오계춘(94) 할머니의 증언이다.

배에서 죽은 아이를 묻고 싶다고 하는 오 할머니에게 당시 경찰들은 길가에 그냥 버려두고 가게 했다고 한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오계춘 할머니 등 수형생존인 18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 사건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구형대로 공소기각을 결정했다.

수형인들은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 사이 군·경에 끌려가 도내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육지 교도소로 이송된 뒤 최소 1년에서 최대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70년만에 사실상의 무죄를 판결받아 억울함을 풀 수는 있게 됐지만 오 할머니처럼 생존 수형인들의 사연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서귀면 하효동에 살던 오회춘(89) 할머니는 17살쯤 육지에 물질을 하러 갈 동네 해녀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누군가 내미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게 문제가 돼 서귀포경찰서에 잡혀간 후 전주형무소로 끌려가 10개월을 복역했다.

아무 죄가 없었지만 어린 처녀가 형무소에 갔다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오 할머니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는 “배보상이니 뭐니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억울함을 푸는 거다”라고 말했다.

임창의(98) 할머니의 사연은 피해를 당하고도 숨겨야했던 4·3 수형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임 할머니가 4·3희생자 신고를 한 것은 4·3 70주년이었던 지난해 5월이다. 4·3발발 70년이 되도록 임 할머니는 참혹한 아픔을 자식들에게 조차 숨기며 살았다.

자신이 수형인명부에 기록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임 할머니는 아직도 죄인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싫어서 그토록 숨기고 싶던 과거를 70년이 지나서야 꺼냈다고 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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