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부족한 ‘국민 노후자금’ 투자… 연금 고갈시기 빨라질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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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10년만에 마이너스 수익률]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 지적에도 국민연금측 “쉽게 못옮긴다” 뒷짐
기금운용 책임자 15개월만에 구해… 본부 지방이전후 인재유출도 극심
수익률 0.1%P만 떨어져도 타격, 국민연금 개편안 틀 흔들릴수도


국민연금 투자 수익률이 10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엔 투자처를 다변화하지 않고 기금운용 전문성을 높이지 못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익률 악화가 자칫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 시점을 앞당기면서 개편안 논의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투자 다변화 의견 간과하더니…

국민연금 투자 손실이 커진 결정적인 이유는 총 637조 원(지난해 10월 말 기준)의 기금 중 17.1%(108조9000억 원)를 투자한 국내 주식의 운용 수익률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0월 국민연금 국내 주식부문 수익률은 마이너스 16.57%를 기록했다. 11∼12월에도 코스피가 0.6% 오르는 데 그치면서 연간 수익률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수익률이 추락한 데는 해외 부동산 등 대체 투자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지 않고 국내 자산 시장만 믿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4월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선 “해외 투자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국민연금 측은 “2017년 국내 주식에서 26% 이상의 고수익을 올렸다. 투자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최근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금의 18.7%(119조4000억 원)를 투자한 해외 주식의 수익률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1∼10월 해외 주식의 연간 수익률은 1.64%였다. 하지만 이후 두 달 동안 글로벌 주식시장이 부진해 수익률이 더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해외 주식의 54.52%가 북미 지역에 몰려 있는데,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1∼12월 7.1% 하락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1조 원 넘게 보유한 미국 애플 주식은 이 기간에 가치가 27.9% 폭락했다.

○ “기금운용 전문성 부족”


지난해 국내외 주식 시장의 부진을 감안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0.18%)보다 더 많은 손실을 본 것은 기금운용본부의 불안정성이 한몫했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의 임기 3년(기본 2년+1년 연장 가능)은 해외 주요 연기금보다 짧아 장기적 안목에서 자금을 굴리기가 어렵다. 국민연금이 본부를 전북 전주로 옮기면서 고급 인재들이 이탈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10월 안효준 CIO를 임명하기까지 1년 3개월간 기금운용의 수장 자리가 비어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위원들의 반대로 대폭 후퇴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각 단체가 추천하고 복지부 장관이 위촉하는 기금운용 외부위원 14명을 모두 ‘금융이나 경제, 자산운용, 법률, 사회복지 분야 경력 3년 이상’ 자격요건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외부위원 14명은 사용자 단체 3명, 근로자 3명, 지역가입자 6명, 국책연구원 2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12월 국회에 제출한 개편안에선 “외부위원 중 4명에게만 자격요건을 적용한다”며 당초 방침에서 크게 물러섰다.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를 현재 각각 3명에서 4명으로 늘리되 이 중 각 2명에게만 자격요건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 수익률 하락의 ‘나비효과’

연금의 수익률 악화는 현재 국회로 넘어간 국민연금 개편안 논의를 크게 흔들 수 있는 변수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2088년까지 연기금 투자 수익률이 평균 4.5%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국민연금 적립금이 2057년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12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3%로 인상해 고갈 시점을 5, 6년 늦추는 방안을 담은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따라서 투자 수익률이 정부가 가정한 것보다 조금만 떨어져도 연금에는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 마이너스 수익률이 장기화하면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편안이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투자 수익률이 기본 가정보다 0.1%포인트 떨어지면 2057년 예상 적자 규모는 124조 원에서 243조 원으로 약 2배로 증가한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건혁 기자
#국민연금#투자#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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