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전문지 네이처 ‘2018년 과학계를 달군 올해의 인물 10명’ 발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9일 0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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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공란’ 상태였던 여성 과학자 항목을 400여 개 만든 물리학자, 차세대 재료 ‘그래핀’의 특성을 혁신한 20대 천재 대학원생, 유전자를 교정한 ‘디자이너 베이비’를 태어나게 했다는 발표로 세계 생명과학계를 발칵 뒤집은 ‘악동’ 중국 과학자….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17일, 2018년 과학계를 달군 올해의 인물 10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매년 ‘올해의 연구’를 꼽는 대부분의 매체와 달리 사람에 초점을 맞춘 연말 기획으로, 전문 과학자 외에 다양한 인사를 선정한다는 특징이 있다. 올해도 교수가 아닌 젊은 연구원이나,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행정가, 정책가가 여럿 포함됐다. 여성 연구원이나 아시아 계 학자도 많이 선정돼 과학계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라는 평가다.

네이처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첫 번째는 학계의 저명한 교수도, 오랜 기간 연구한 학자도 아니다. 22세의 대학원생이다. 위안 차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 및 계산과학부 연구원은 3월 네이처에 그래핀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을 실으며 단번에 주목받았다. 그래핀에 약간의 전기장을 걸고 절대영도보다 1.7도 높은 온도에 두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가 된다는 연구와, 이 연구에서 그래핀 막 두 장의 각도를 1.1도 빗겨 겹치기만 하면 저항 없이 전기가 통하는 ‘초전도체’의 특성을 띤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초전도체는 금속 같은 도체를 극저온에 놓았을 때에나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을 ‘마법 각도’의 조정만으로 구현해 학계의 탄성을 자아냈다.

세계 과학계는 18세에 이미 중국과기대를 졸업한 떠오르는 샛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중국과기대는 그를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밤하늘 관찰이 취미인 22세의 연구원은 별이 잘 보이는 곳을 택하기 위해 미국에 남을 계획이라 한다.

비비안 슬론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진화유전학과 박사후연구원은 올해 가장 충격적인 ‘가정사’를 세상에 공개했다. 수만 년 전 인간 뼈의 DNA를 분석한 결과 뼈 주인의 어머니는 네안데르탈인, 아버지는 멸종한 친척 인류인 데니소바인임을 밝혀냈다. 워낙 충격적인 결과라, 그도 처음에 실험 결과가 나왔을 때엔 실수한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결과임을 알고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연구로 꼽혔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55년 만에 여성 과학자인 도나 스트릭랜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발표 당시,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제스 웨이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물리학부 연구원은 이런 문제를 일찌감치 발견하고, 고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과학 분야 여성과 유색인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현실을 바꾸고자 올해 400 명이 넘는 여성 과학자 소개 글을 위키피디아에 올렸다. 네이처는 웨이드 연구원의 노고에 호응하듯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며 남녀 성비를 5:5로 정확히 맞췄다.

네이처는 매년 환경 운동가를 올해의 인물에 포함시키는 등 환경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번에는 비인여 말레이시아 에너지과학기술환경기후변화부 장관과 발레리 마송 델모트 프랑스 기후환경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두 명을 선정했다. 여 장관은 올해 35세의 나이로 장관직에 올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20%까지 올리고 플라스틱을 퇴출하기 위한 12년 계획을 제시하는 등 환경 정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마송 델모트 수석연구원은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되면 12년 내로 지구 산호초의 90%를 파괴하는 등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줬다.

‘악동’으로 이름을 올린 주인공도 있다. 올해 과학계에서 최고의 논란을 낳은 허젠쿠이 중국 난팡과기대 교수다. 허 교수는 11월 말 홍콩에서 열린 인간유전체교정국제회의에서 세계 최초로 유전자 교정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수정한 인간 쌍둥이 아기 출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즉각 연구 윤리를 어겼다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네이처를 포함해 세계 많은 학술지들이 논문을 게재할 때 비싼 게재료를 받는다. 논문을 보려 해도 돈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공공성을 지녀야 하는 과학을 상업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역설적으로, 이런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 온 네이처가 올해의 인물에 과학 연구 결과를 누구나 무료로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게 하려는 과학정책가를 선정했다. 로버트 얀 스미스 EU집행위원회 연구혁신총국장은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과학 논문을 무료로 볼 수 있게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인 ‘플랜S’의 기획자다. 플랜S에 서명한 유럽연구위원회(ERC) 등 유럽, 미국의 연구 지원재단 16곳의 자금을 지원 받은 결과물은 2020년까지 모든 사람이 무료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 투고해야 한다.

그밖에 과학계와 공학계의 오랜 난제를 푼 주인공들이 올해의 인물로 꼽혔다. 요시카와 마코토 일본항공우주국(JAXA) 우주항공과학과 교수는 올해 최고의 우주 이벤트로 꼽힌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프로젝트 하야부사2를 총괄했다. 하야부사 2는 지난 9월 세계 최초로 탐사로봇이 소행성에 착륙하는 기록을 세웠다.

바바라 래 밴터 유전계보학 컨설턴트는 미국연방수사국(FBI)의 부탁을 받고 DNA 공개 데이터를 활용해 70~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일대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골든스테이트 킬러’를 잡았다. ‘GED매치’라는 공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연쇄살인마의 친척으로 추정되는 DNA를 발견해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검거해 냈다. 유럽우주국의 가이아 관측 위성이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13억 개 별의 위치와 움직임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논문으로 펴낸 앤서니 브라운 네덜란드 레이든대 수석연구원도 올해의 인물로 꼽혔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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