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이영학은 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나
더보기

이영학은 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나

이지훈 기자입력 2018-12-15 10:06수정 2018-12-15 10:2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피해자 부친 “20~30년 뒤 이영학 새 삶 찾을 수도 … 내 딸은 기회 없는데” 절규 ①갖고 있던 성인용품 사용한 것은 우발적
②살해 후 사체유기 방법 알아본 것도 우발적
③재범 가능성 높지 않음


[shutterstock]
“감형을 위한 재판이었습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36)에게 살해당한 피해 여중생 민정(가명·당시 14) 양의 아버지 김모 씨는 거듭 말했다. 자신의 딸을 추행하고 살해한 이영학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1월 29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대법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김씨는 “이의 있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이내 저지당했다.

민정이가 이영학에게 살해당한 건 2017년 10월 1일. 그로부터 한 달 보름여가 지난 11월 중순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이후 대법원 마지막 공판까지 총 9차례의 공판이 있을 때마다 김씨는 늘 법원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주요기사

피고인이 이성적 사람 아니어서 사형은 가혹

2월 1심 법원은 이영학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석방이나 사면 등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른바 ‘절대적 종신형’이 도입되어 있지 않는 한, 지금의 무기징역형은 사형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즉 현재처럼 무기징역형에 가석방이나 감형이 존재하는 한 이영학을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방법은 사형밖엔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이어 ‘사형 선고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비록 사형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사형수로서 평생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해 이 사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공감과 위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9월 항소심은 이영학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감형 사유는 이렇다. “피고인을 이성적이고 책임감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다.” 학력이 낮고 어려서부터 난치병을 앓았으며 장애인 판정을 받은 이영학에게 온전히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일주일 후 집 근처 커피숍에서 기자와 만난 김씨는 여전히 얼굴빛이 어두웠다. 기자와 대화하는 1시간 동안 그의 얼굴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수차례 반복해 지나갔다. 그는 “이영학을 죽여달라는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1심 판결대로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이영학을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키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4개월간 6차례 공판을 열어 나온 1심 사형 선고를, 항소심 재판부가 단 2번의 공판으로 뒤집은 것을 피해자 유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영학이 사형당한다고 딸애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재판부로부터 ‘무기징역’을 듣는 순간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릅디다. 이영학은 감형을 받아 20년 후, 30년 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을지도 몰라요. 우리 딸은 그럴 수가 없는데…. 애 엄마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사흘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울기만 했어요.”

이영학은 어떻게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될 수 있었을까. 1심과 항소심 판결문을 비교, 대조해본다. 항소심 때 추가로 제출되거나 인정된 증거가 있었는지,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양 재판부가 다른 해석을 내놓았던 것인지 살펴봤다.

1 강제추행·살인·사체유기는 ‘우발적’이었다

[뉴시스]
1심 재판부는 이영학이 변태적 성욕을 해소하고자 구체적인 범행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한 것으로 봤다.

1심 및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영학은 자신의 딸 A(당시 14)양의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친구들의 사진을 보다 “엄마 대신 나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친구들 중 집안 형편이 좋지 않거나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지목하며 ‘사망한 아내와 닮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딸에게 요구한다.

‘추행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유인했다’는 사실은 항소심 재판부도 인정하는 대목. 하지만 이후 범행에 대해선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다르다. 항소심 재판부는 “추행유인 외 (이영학이 저지른) 강제추행·살해·사체유기는 전체적으로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고 볼 수 없다.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히 살해 범행은 공소사실에도 ‘우발적 범행’으로 기재돼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말 이영학은 ‘우발적으로’ 강제추행·살해·사체유기를 저질렀을까. 1심 및 항소심 판결문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이영학의 범행을 보자.

“죽이기 위해 준비한 게 아니다”

이영학은 지난해 9월 29일 딸 A양에게 피해자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리고 자양강장제에 수면제를 녹인 후 피해자에게 먹였다. 자양강장제 한 병을 마시고도 피해자가 잠들지 않자 이영학은 딸을 시켜 감기약인 것처럼 건네주며 피해자가 수면제를 더 먹게 했다.

피해자가 잠이 들자 이영학은 A양을 시켜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나가 인근 시장에서 전원을 끄게 한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면 마지막으로 전원이 꺼진 장소를 알 수 있어서다. 전원을 끈 피해자의 휴대전화는 예전에 살던 집에 숨겨놨다 이후 경기 의정부시의 한 다리 밑에 버린다. 피해자가 가출한 것처럼 위장하려고 범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영학은 잠든 피해자를 상대로 온갖 성기구를 활용해 학대를 저지른다. 집 안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고, 목격자 또한 없다.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 당사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영학은 추행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유인했고, 자신이 성적 학대를 했다고 경찰과 검찰에 진술했다.

이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렇다. “강제추행에 사용된 범행도구는 주로 피고인이 아내와 부부 생활에 사용하던 성인용품들로,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만을 위해 특별히 사전에 따로 구입하거나 준비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의 범행을 위해 구매한 성인용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영학이 피해자에게 저지른 강제추행이 ‘우발적’이라고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어 살인 또한 우발적이라고 봤다.

1심 및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24시간가량 수면제에 취한 채 이영학에게 추행당한 피해자가 깨어난다. 피해자가 손으로 이영학을 치며 “누구야”라고 고함치고 반항하자 이영학은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물에 젖은 수건을 집어 들어 피해자 얼굴에 덮는다. 피해자가 더는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누른 뒤 넥타이를 가져와 피해자 목을 감아 살해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살해 범행의 주된 도구였던 ‘젖은 수건’에 주목한다. 항소심 공판에서 판사는 이영학에게 “왜 젖은 수건을 놓아두었나”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에 이영학은 “피해자의 몸을 닦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 진술은 판결문에 그대로 인용된다. “살해 범행의 주된 도구였던 수건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땀과 물기 등을 닦은 후 침대 옆에 놓아둔 것이다. 피해자가 깨어나자 자신의 신원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살해를 저질렀다.”

살해 범행의 도구였던 젖은 수건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기에 ‘우발적 범행’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후 넥타이를 가져와 피해자의 목을 졸랐으나 젖은 수건에 의한 경부압박질식이 피해자의 사인(死因)이었으므로 ‘넥타이 범행’은 살해 행위로 인정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숨지고 4시간 뒤 이영학은 A양과 함께 사체를 버리기로 공모한다. 당시 이영학은 인터넷에 ‘사체유기 방법’을 검색하고 지시대로 따른다. 사체에 곰팡이제거제를 뿌리고 여행용 가방에 넣는다. 자신의 차에 가방이 들어가지 않자 친형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빌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의 야산으로 향한다. 이영학은 자신과 딸의 DNA가 검출되지 않게 하려고 알몸 상태의 사체를 100m 높이 낭떠러지 아래로 집어던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또한 ‘우발적 사체유기’라고 봤다. 살해한 후에야 사체유기 방법을 검색했다는 이유에서다. 판결문에는 “그와 같은 유기 방법을 그 무렵(살해 후)에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사전에 계획한 범행이 아니었기에 살해 후에야 방법을 검색했다는 논리다.

또 자신의 승용차가 아닌 형의 SUV를 빌렸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만약 사체유기를 미리 계획했다면 사체를 담을 여행용 가방이 자신의 승용차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예측하고 애초부터 SUV를 빌렸을 것이라고 추론한 것이다.

반면 1심 재판부는 이영학의 행위가 계획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영학은 딸 A양과 이 사건 범행을 적극적으로 공모했고, 범행 방법과 이후 행동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이 같은 계획 하에 실제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를 살해한 이후 사체를 유기하는 과정까지 주도면밀하게 행동했다. 이영학이 이 사건의 강제추행, 살인 등 일체의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 반응에 때맞춰 대응하는 점에 비춰보면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2. ‘아내의 자살’ 직후 벌어진 일이다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12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영학은 시종일관 “아내가 죽은 후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실제 이영학의 아내 최모 씨는 범행 한 달 전 서울 중랑구의 자택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했다.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 당시 유서가 발견됐지만, 컴퓨터로 작성돼 고인(故人)이 직접 썼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씨가 사망한 경위는 이렇다.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보름 전, 이영학은 아내로부터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시아버지(이영학의 계부)로부터 수차례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이영학은 아내로 하여금 강원도 영월경찰서에 계부를 강간 혐의로 고소하게 했다. 그러나 “증거 없이는 처벌이 어렵다”는 경찰의 답변을 들었다.

이때 이영학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벌인다.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며 아내에게 자신의 계부와 성관계를 가져 속옷 등 증거를 확보하라고 요구한다. 계부를 처벌하고자 아내에게 한 번 더 성관계를 가지라고 종용한 것이다. 남편의 요구에 따라 시아버지와 성관계를 맺은 최씨는 그 증거를 경찰에 제출한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 자택에서 이영학과 다투다 모기약통으로 머리를 맞은 뒤 화장실로 달려가 투신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사실상 이영학이 아내 최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봤다. 실제 이영학은 최씨에게 14차례 성매매를 강요했으며, 이 장면을 불법촬영하는 등 오랜 기간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해왔다. 1심은 계부와 성관계를 요구한 것 또한 최씨를 학대한 정황으로 봤으며 이것이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아내 사망 후 극도의 분노, 죄책감, 충격 등을 경험했고, 왜곡된 성적 충동을 해소하거나 억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봤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영학이 사건 범행 직전 극심한 정신적 불안과 성적 욕구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비정상적인 심리·생리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영학이 딸에게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를 데려오라”고 요구한 행위를 “가출청소년이던 아내 최씨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이를 데려와 추행한 후 아내가 돼달라고 설득하면 승낙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갖게 됐다”고 해석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직전 상황이 이영학을 심신미약, 심신장애와 같은 지경에 빠지게 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3 재범 가능성이 높지 않다

1심과 항소심은 각각 이영학을 상대로 정신감정을 실시했다. 1심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과학수사1과에서 작성한 ‘통합심리분석 결과통보서’를 인용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이영학의 아이큐(IQ)는 86 수준이다. 강인한 남성성에 집착하며 자극 추구적인 행동을 통해 자기과시적인 면을 드러내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이영학은 통제하기 쉬운 대상에게 권위적인 태도로 자신의 욕구를 노골적으로 표출할 개연성이 높으며, 성적 가학 및 물품 음란을 비롯한 ‘변태성욕장애’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성일탈검사(KISD)를 실시한 이 보고서는 이영학이 성적 가학, 물품 음란, 마찰 도착, 관음장애를 보인다고도 판단했으며, 사이코패스 평정척도(PCL-R) 결과가 25점으로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즉 이영학을 변태성욕장애를 지닌 사이코패스 위험군으로 진단한 것이다.

이영학은 항소심에서 정신감정을 다시 받는다. 치료감호소장이 보낸 정신감정 결과 통보에 따르면 이영학에게는 정신병질적이고 반사회적 성격의 특성이 있으나, 소아성애장애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보고서는 이영학의 가학증적 성행위가 배우자에게만 국한돼 있기에 타인에게 위험하지 않고, 변태성욕을 갖고 있긴 하나 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또한 한국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척도(KSORAS) 결과표에 따르면 위험성 수준이 중간 단계(7~12점)에 속하는 11점이라고도 했다.

이영학이 성욕을 해소하려고 피해 여중생을 이용했다고 스스로도 진술했지만 항소심은 재범 우려를 일축했다.

4 원심 판단만큼 범행이 잔혹하지도 않다

1심은 이영학이 ‘극도로 비인간적이고 잔인하고 포악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려고 피해자를 집으로 유인한 뒤 딸로 하여금 14세에 불과한 피해자에게 마약류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를 먹였고, 범행 도중 피해자가 깨어날까 봐 주사기를 이용해 다시 졸피뎀을 강제로 투입했다는 것이다. 또 24시간에 걸쳐 피해자에게 기본적인 영양도 공급하지 않고 추행을 일삼다 결국 살인한 이영학을 ‘가혹하고 잔인하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른 범인으로 봤다. 1심 재판부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살인, 사체유기 등 중대 범죄가 결합돼 있어 그 어떤 범행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하고 잔인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영학의 범행이 1심의 판단처럼 잔인하거나 포악하지 않다고 봤다. 이에 대한 근거로 피해자 사체에 남아 있는 상처를 들었다. 피해자 신체에 특기할 만한 상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상대로 심한 학대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를 내놓았다.

항소심은 이영학의 초기 경찰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사 초기 이영학은 경찰에서 “피해자가 살아 있음을 계속 확인하면서 피해자의 코와 입을 젖은 수건으로 막고 넥타이로 감는 등의 방식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자기과시적인 특성을 지닌 이영학의 초기 진술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확보한 이영학의 진술을 100% 신뢰할 수 없기에 ‘범행의 잔혹성’에 대해서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도 이영학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이영학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킬 필요가 있”지만, “이영학의 교화 가능성 등을 부정해 사형에 처할 정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정이가 떠난 이후의 삶

[shutterstock]
지난해 10월 김씨는 딸 민정이를 나무 아래 묻었다. 딸이 묻힌 곳은 집으로부터 2시간가량 떨어져 있는데, 김씨는 매주 한 번씩 도시락을 싸들고 가 딸이 묻힌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도시락엔 주로 짜장면과 김치볶음밥이 담긴다. 딸이 좋아하던 메뉴다. 그는 “과일만 빼고 다 잘 먹던 아이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짜장면과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민정이를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키운 딸”이라고 했다. 오빠와 일곱 살 차이가 나는 민정이는 김씨 부부에게 보물과도 같은 늦둥이 막내딸이었다. 그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딸이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고픈 보통 아버지였다. 그는 “엄마한테 용돈을 받을 때 용돈이 더 필요하다는 듯이 민정이가 나를 쳐다볼 때가 있었다”며 “아내 몰래 민정이 주머니에 1만~2만 원을 넣어주면 그걸 참 좋아했는데…”라며 울먹였다.

‘그날’ 이후 김씨 부부는 생계에서 손을 놔버렸다. 날마다 술을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던 김씨는 운전 일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됐다. 미용실을 운영하던 아내는 1년 넘게 가게 문을 닫았다. 김씨는 “사소한 일에도 분노 조절이 잘 안 된다”며 “딸을 잘 키우려고 운전대를 잡았는데 삶의 의욕이 전부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민정이의 방이다. 이사하려고 집을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그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차마 정리하지 못한 딸의 방. 하지만 보고 있으면 힘들어 방문을 꼭 닫아둔다. 침대, 책상 등 큰 가구는 정리했지만, 딸의 옷 몇 벌과 사진은 버릴 수 없어 그대로 뒀다. 민정이가 그 일을 당하기 전날 입었던 옷은 흰색 줄무늬 셔츠였다. “딸의 체취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직 못 버리고 있다”며 김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지훈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easy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8호에 실렸습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포토·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