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 공부하는 우즈베크 아이들 “한국으로 유학 갈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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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크에 부는 ‘코리안 드림’ 열풍
한국어 국정 교과서로 수업하고 대학교에선 한국학 단과대 설립
올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 6183명… 한국행 유학생은 7000명 넘어

지난달 2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제35학교 초등 4학년 학생들이 한국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수줍은 탓인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넨 게 전부였지만 한국 동요는 정말 잘 불렀다. 타슈켄트=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지난달 2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제35학교 초등 4학년 학생들이 한국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수줍은 탓인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넨 게 전부였지만 한국 동요는 정말 잘 불렀다. 타슈켄트=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이곳 아이들은 누구나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을 잘 알고 있었다.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는 이 나라의 ‘국민 드라마’로 통했다. 한국인을 보면 누구나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지난달 28∼30일 찾은 우즈베키스탄은 한국보다 더 ‘한국적’이었다.

○초등생부터 대학생까지 한국어 ‘열공’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익숙한 멜로디에 맞춰 율동을 시작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35학교 초등 4학년 한국어 수업 현장이다. 선생님이 책상이 그려진 한국어 낱말 카드를 들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책상”이라고 소리쳤다. 옆 교실에서는 9학년(한국 고교 1학년) 학생들이 한국어 동사 변형을 배우고 있었다.

초중고교 통합학교인 35학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 교육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고려인 한국어 교사가 1990년 방과 후 한국어 수업을 연 게 시작이었다. 한국어는 2009년 정규과목이 됐다. 현재 전교생 1849명 중 809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도 한국어는 큰 인기다. 타슈켄트 국립 동방대는 올 9월 중앙아시아 최초로 한국학 단과대를 설립했다. 1992년 한국어과에 이어 이번에 한국정치경제과, 한국역사문화과를 신설했다. 만노노프 압두라킴 동방대 총장은 “한국 전반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라며 “한국어과는 올해 전 학과 중 가장 높은 입학 경쟁률을 보였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은 47개 학교 총 1만1400여 명에 이른다. 2015∼2017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한국교육원이 함께 개발한 한국어 국정 교과서가 나오면서 한국어 채택 학교가 급증했다. 국정 교과서로만 수업을 해야 하는 이곳에서 외국어 교과서가 발간된 건 한국어가 영어에 이어 두 번째다.

정규학교가 아닌 한국교육원과 한글학교 수강생까지 합치면 한국어 교육 인원은 2만 명이 넘는다. 35학교 학생인 아흐메도바 세빈치 양(15)도 한국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그는 “한국어능력시험 6급(최고등급)을 받아 한국에서 유학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한국 교육부가 설립한 한국교육원은 연중 한국어 무료 강좌를 운영한다. 경쟁률은 3 대 1에 달한다. 오기열 한국교육원장은 “한국어능력시험 원서 접수 날에는 인파가 몰려 경찰이 교통 지도를 할 정도”라고 했다.

○한국을 모델로 삼은 ‘젊은 나라’ 우즈베크

우즈베키스탄의 한국어 열풍은 한류만으론 설명되지 않았다. 3년 전 파견된 이순흠 한국교육원 부원장은 “이곳에선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똑똑한 아이를 한국으로 유학 보낼 정도로 교육열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국, 베트남, 몽골 다음으로 한국에 유학생을 많이 보낸 나라다.

왜 한국일까.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독립한 ‘젊은 나라’다. 소련 시절 목화 생산기지였던 탓에 변변한 산업 기반이 없었다. 당시 정부가 발전 모델로 삼은 나라가 한국이었다. 대우그룹은 1996년 우즈베키스탄에 중앙아시아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현재 이 공장은 국유화됐지만 대우차에 대한 현지인의 향수는 여전하다. 한국에선 오래전 단종된 대우차 ‘티코’를 이곳에선 쉽게 볼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지한파 인사도 많다. 이 나라 국민교육부의 사르바르 바바코자예프 차관도 대표적 지한파다. 그는 2014년 이곳 정부와 인하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타슈켄트-인하대 총장을 지냈다. 바바코자예프 차관은 “모든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000달러로 한국의 15분의 1 수준이지만 인구(3300만 명)가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고, 평균 연령이 28.5세인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모델로 인적 자원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한류가 더해지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은 ‘이웃 나라’다. 올해 동방대에 입학한 소디코바 라노 씨(18·여)는 “어릴 적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며 “나중에 한국 고려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타슈켄트로 돌아와 마케팅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은 ‘꿈’ 자체였다.

타슈켄트=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우즈베키스탄#한국어능력시험#코리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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