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4개 측정 기본단위 기준, 143년 만에 확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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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도량형총회, 기본단위 새로 정의
내년 5월 발효… 단위 수치는 유지
화학-의학 분야 정밀도 향상 기대… 일상 생활에는 큰 영향 없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있다. 질량단위인 ‘킬로그램(kg)’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과학계는 키블저울을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정교하게 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있다. 질량단위인 ‘킬로그램(kg)’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과학계는 키블저울을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정교하게 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인류의 가장 큰 지적 성취 중 하나는 ‘단위’다. 다른 단위의 기본이 되며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질 수 없는 국제단위계(SI)의 ‘기본단위’ 절반 이상이 16일(한국 시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리고 있는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바뀐다. 일반인에게 친숙한 질량 단위인 킬로그램(kg)과 전류 단위 암페어(A)는 물론이고 온도를 측정하는 과학적 단위인 ‘켈빈(K)’과 물질의 양을 재는 단위인 ‘몰(mol)’이 새로운 기준에 따라 재정의된다. 발효는 내년 5월 20일부터다.

7개 기본단위 중 4개가 한꺼번에 달라지는 것은 143년에 이르는 근대 단위 표준화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은 “과학계는 이날을 위해 25년 동안 단위 기준 변경의 과학적 타당성과 혹시 모를 여파를 주의 깊게 연구해 왔다”며 “기존 단위의 수치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일상에 미치는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개 단위를 다시 정의하는 이유는 기존의 정의가 불안정하거나 시간에 따라 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단위는 측정의 기본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자’다. 우주 어디에 가도 이 자 하나로 모든 치수를 통일해서 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단위가 7개 있다. 질량, 온도, 전류, 물질의 양 외에 시간(초), 길이(미터), 빛의 강도(광도, 칸델라)가 포함된다.

이 단위들은 시간이나 공간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 특히 ‘단위의 ABC’인 7개 기본단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면 안 된다. 측정 과학자들은 1875년 세계 최초의 국제조약인 ‘미터협약’을 맺고, 이를 바탕으로 1889년 길이의 자인 ‘국제미터원기’와 질량의 자인 ‘국제킬로그램원기’를 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살펴보니, 이들 원기는 절대불변의 자가 아니었다. 물질이 산화 등 화학반응을 겪거나, 표면에 이물질이 쌓이면서 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킬로그램원기의 경우 100년 동안 0.05mg이 변했다. 1억분의 5가 변한 미세한 변화지만, 최근 정밀과학의 발전으로 이런 미세한 차이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측정 과학자들은 변하지 않는 우주의 물리값(상수)을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1967년 시간의 단위인 초가 가장 먼저 바뀌었다. 세슘-133 원자가 특정 에너지 상태가 되면 내는 빛(복사선)이 있는데, 그 빛의 지속 시간은 양자역학에 의해 늘 일정한 특징이 있다. 과학자들은 그 시간의 배수로 1초의 정의를 바꿨다. 1979년에는 빛의 강도 단위인 칸델라를 특정 주파수의 빛을 중심으로 한 물리량 기준으로 바꿨다. 1983년에는 길이의 단위인 미터를 우주 불변의 값인 빛 속도의 2억9979만2458분의 1로 바꿨다.

이번에는 나머지 네 개의 기본단위가 한꺼번에 바뀐다. 질량은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플랑크 상수’를 이용한다. 플랑크 상수는 올해 7월까지 미국과 캐나다 등이 무수한 실험과 측정을 통해 값을 얻은 최신 결과를 바탕으로 정해졌다. 일정한 시간 동안 전자기력과 중력이 각각 물체를 당길 때 한 일의 양을 비교하면, 그 수식에 포함된 플랑크 상수를 구할 수 있다.

전류 역시 수십 년 동안 실험으로 얻은 전자의 전하량인 ‘기본전하’ 값을 이용해 정의한다. 온도의 경우 지금까지 물이 액체, 기체, 고체 모두 존재하는 ‘삼중점’에서의 온도를 기준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앞으로 온도 단위는 ‘볼츠만 상수’를 쓰는 것으로 바뀐다. 물질의 양도 화학의 절대값인 ‘아보가드로 상수’를 이용한 정의로 변경된다. 모두 오랜 세월 측정을 통해 경험적으로 결정한 상수다.

이처럼 바뀌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변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정밀 의약이나 화학 등의 분야는 정밀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남 표준연 전자기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은 “예를 들어 미소 전류 측정 기술이 정교해지면, 반도체의 누설전류를 정밀하게 측정하거나 미세먼지 개수, 방사선 피폭량 측정 등을 더 정밀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적인 단위 재정의에는 한국도 일부 기여를 했다. 온도 단위 켈빈을 정의할 때 필요한 볼츠만 상수 측정에서 대표적인 표준기구인 프랑스 및 영국 표준기관의 값이 미세하게 달랐다. 양인석 표준연 열유체표준센터장팀은 자체 측정을 통해 영국 기관의 오류를 밝혀내 정확한 상수를 찾는 ‘심판자’ 역할을 했다.
 
윤신영 ashilla@donga.com·김진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단위#킬로그램#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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