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청년 발언대]청년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무엇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3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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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적어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선택들의 연속은 ‘국익’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의견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한국 사회의 토론에서 국익은 정치와 외교정책의 방향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국익을 달성하는 정책에 관한 논쟁 이전에 ‘무엇이 국익인가?’라는 논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느낀다. 최근의 여론이 진보와 보수,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정치적 사상이 절대 화해할 수 없다고 느끼고 배타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정치인들에 진저리치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각 주장에 전제된 국익 개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국익은 ‘국가의 이익’이라는 너무나도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사회적 토론과 합의의 여과기를 거쳐야 한다. 특히 대내적으로 건전한 민주정치가 이루어질수록, 대외적으로 주변 정세가 급변할수록 안으로부터 수렴된 명확한 국익 개념의 중요성이 커진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작금의 한국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기에 여기서는 변화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반영한 명확한 외교적 국익 개념 설정의 필요성과 그 대략적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특히 필자는 새로운 한반도 구조 속에서 살아갈, 그리고 그 구조를 다시 변화시킬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국익 논쟁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다층적인 국익 설정이 필요한 시점

최근의 정세를 종합해 한반도의 구조를 바라보자면 한반도는 두 가지 축의 새로운 변화를 겪는 중이다. 첫 번째 축은 세계적 냉전의 해체 이후에도 여전히 ‘냉전 지대’로 남아있던 한반도의 남북관계축이다. 편의상 이를 한반도의 종축이라고 부른다면, 이 종축은 한일, 한중관계와 함께 동북아의 지역적 구조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의 종축은 비핵화문제와 맞물려 오랜 냉전구도를 종식하려는 변화를 겪고 있다. 두 번째로 세계적 구조 차원에서 미중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통상마찰은 이미 ‘무역전쟁’ 수준으로까지 치달았고 남중국해에서의 군함 충돌위기는 미중의 충돌이 얼마든지 군사적으로 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 연구소 연설은 중국을 상대로 신냉전을 선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데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의 횡축이 패권다툼기의 전쟁을 예견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시험하는 변화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교정책은 한일, 한중, 한미, 남북 등의 양자관계까지 고려해야 하지만 편의상 앞서 언급한 두 개의 한반도 축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자면, 지금 한국에게는 두 개의 다른 방향을 가진 톱니바퀴 축의 변화를 반영한 국익 설정이 필요하다. 현실주의, 자유주의 등 현대의 지배적인 국제정치이론에서 모든 국가의 목표는 생존이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거대한 목표 하위에는 많은 세부목표가 있기에 여기서 세부적 국익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진다.

구체적으로 미중의 횡축구조에서 한국은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큰 민감성(sensibility)을 갖고 있기에 두 국가 사이의 패권다툼이 격화된다면 한국은 어느 시점에선가 한쪽을 희생하는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는 최근의 ‘사드 보복’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장기적으로 코헤인과 나이의 ‘복합상호의존론’에서 제시된 취약성(vulnerability)을 낮추는 선택이 필요하다. 안보에서 한미동맹을 유지하지만 ‘연루’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에 대한 경계 및 국방력 강화가 필요하고, 경제적으로는 정부의 산업정책 하에 수출품목을 다양화하고 무역경로의 다양화를 꾀해 중국에 대한 무역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생존이라는 거대 목표를 위해 ‘일정 정도의 자율성’이라는 국익 설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관계의 종축구조에서는 특히 더 명확한 목표와 국익 설정이 필요하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통일과 민족담론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렇기에 지금의 남북관계 냉전 구도 해체가 평화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 통일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짧게 잡아도 수십 년이 걸리는 과제인 만큼 미래 세대의 주역이 될 지금의 청년 세대가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다.

개인적으로는 남북관계의 목표를 평화와 번영으로 잡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라는 거대한 목표 이전 단계로서 평화 체제 구축과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해 안보 위협 감소와 새로운 경제적 활로를 찾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익’이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목표는 ‘항구적 평화’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국익 설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두 축에서 설정한 국익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두 개의 톱니바퀴를 잘 돌아가게 하려면 횡축에서의 자율성과 종축에서의 평화체제 주도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의 평화체제 주도권은 미중관계에서의 자율성 강화에 안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미중관계에서의 자율성 확보 노력은 미중의 힘겨루기가 남북관계에 끼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무엇보다도 필요한 건 국익에 대한 견고한 합의와 이를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게 하는 국민들의 지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의 지지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임과 동시에 퍼트남의 ‘양면게임이론’에서처럼 대외적 협상력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와서, 소모적 정치 논쟁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확한 국익 설정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의 청년세대는 많이 피곤하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쉬운 게 없는 세대이기에 이런 정치적 논의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수 있고 필자도 그런 압박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가의 장기적 발전에 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최소한의 관심과 참여를 통한 최소한의 국익 설정만 이루어져도 한국의 외교적 정책이 훨씬 뒷받침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청년 세대는 앞으로 변화한 한반도 구조의 중심에 서게 될 세대이기에 더욱 현 사안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강한 이유는 한 번 자발적 논의와 합의가 잘 이루어져 국가의 목표와 정책이 명확히 결정된다면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외교정책의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진핑, 미국의 트럼프, 일본의 아베 등 주변 국가가 다시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회귀할 때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다시 굳건히 한 한국은 그 강점을 발휘할 때다. 특히 최근 대학가에서 한반도문제에 관한 자발적인 세미나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를 자양분 삼은 청년 주도의 국익 논의 활성화와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다양한 세대의 대학생,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우아한 프로젝트가 이런 논의에 불씨를 당기는 공론장이 되길 소망한다.

장성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외교학·경제학 전공) 1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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