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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전쟁사]〈32〉습관성 기억 상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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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전쟁사]〈32〉습관성 기억 상실증

임용한 역사학자입력 2018-11-13 03:00수정 2018-11-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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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개최됐다. 2014년에는 개전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4년 만에 다시 1차대전 관련 기념행사로 떠들썩하다. 하지만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상자만 1000만 명이 넘었던 비극의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무엇을 돌아볼 것인가?

20세기만큼 인류에게 벅찬 감동과 희망으로 시작된 시기는 없었다. 과학과 이성, 민주주의의 발달은 인류에게 전에 없는 번영과 평화를 안겨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0년 남짓 지난 후 세계를 호령하던 선진국 시민들은 진흙탕이 된 참호 속에서 뒹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호각 소리와 함께 돌격이 시작되면 기관총의 십자화망이 병사들을 휩쓸었다. 중대가 전멸하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기억은 인류가 이런 비극에서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차대전으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발생했고, 각국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급성장하면서 냉전 시대의 기틀이 마련됐다. 살아남은 세대는 복수를 외치며 다음 전쟁을 준비했고, 전쟁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 반대가 새로운 전쟁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비극은 국가와 사회의 혐오와 이기주의를 더 키웠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사실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외교적 정책적 결정들이 한결같이 세계대전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는 점이다. 1차대전이 남긴 최고의 교훈은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종전 기념식을 열고 열강 정상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인간은 역사의 교훈을 반드시 잊는다.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고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분노가 그 증거이다. 100년이면 1000만 명의 죽음이 주는 교훈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종전 100주년 행사가 그 망각을 방지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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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종전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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