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찍힌 러시아-中-유럽, ‘킹 달러’에 반기 들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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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 회사인 러시아의 알로사그룹은 최근 이란, 중국 고객과 자국 화폐 루블화로 시범 거래를 했다. 러시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脫)달러화(de-dollarization)’ 정책에 부응하려는 시도였지만 달러를 버리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루블화 변동성이 크다 보니 계약 후 부리나케 결제를 마쳐야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비달러화 교역이 늘고 있지만 기업들은 달러화를 쓰는 경쟁자보다 더 큰 비용을 감수하는 걸 주저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독주에 맞서 러시아 중국 유럽 등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킹 달러(King Dollar)’의 위세에 눌려 변죽만 울리는 ‘정치적 수사(修辭)’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 트럼프의 ‘달러 무기화’에 반발, ‘달러로부터 독립’ 선언

러시아는 올해 초 미국 국채의 80%를 매각하고 금 보유량을 크게 늘렸다. 루블화로 결제하는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탈달러화’ 계획도 연말에 내놓는다. WSJ는 “미국의 제재에 대한 자국 경제 ‘예방접종’ 성격이며 기축통화인 달러화와 금융 시스템을 활용한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전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의 제재는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엄청난 전략적 실수’”라며 “자신들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3월 위안화 원유 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미국의 관세 보복으로 수출이 차질을 빚게 되면 달러로 구입해야 하는 원자재 확보가 어렵다는 게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와 보복 관세로 갈등을 빚고 있는 유럽연합(EU)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9월 “유로를 기축통화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내에서는 미국과 별개의 독립적 지불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 정치적 수사 한계 넘지 못한 ‘달러로부터 독립’

러시아의 달러 의존도가 줄긴 했지만 소말리아 해적마저 몸값으로 달러를 요구하는 ‘달러 패권 시대’에 달러를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러시아는 달러로 거래되는 석유와 가스 매출이 국가 예산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리처드 시걸 매뉴라이프애셋매니지먼트 신흥시장 분석가는 “러시아 경제는 원자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탈달러’가 장기적으로 중요한 움직임이 될 것이라는 데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의 국제화와 탈달러화에 시동을 걸었지만 달러의 위세에 여전히 눌려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11일 CNN과 인터뷰에서 “미국 통화의 국제적 힘 때문에 유로를 달러만큼 강력하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며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해서는 달러와 같은 강력한 통화도 필요하고 대안(통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달러 약세 점친 ‘달러 베어들’ 동면 들어가야 할 수도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 달러화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미국 경제가 13년 만에 최고인 3%에 육박하는 성장이 예상되는 데다 점진적인 금리 인상 기조가 확인되면서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

블룸버그뉴스는 “‘달러 베어(dollar bears·달러 약세를 점치는 사람들)’는 올겨울 동면에 들어가고 싶을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내년 미국 경제 성장세가 식어가면서 달러가 약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외환 전문가들 사이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문제, 이탈리아 재정위기 심화 위협,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강세가 더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트럼프#미국#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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