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20>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도 드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2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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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거 말고 저 뒤에 있는 요구르트 주세요.”

아차, 재빠르게 반찬 뒤로 숨긴다는 게 그만 첫째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그건 엄마 건데…” 하는 말은 당연히 소용없었다. 첫째를 보고 둘째, 셋째도 “나도 그거” “나도”하며 모두 같은 요구르트를 가리켰다. “너희들 먹을 걸로는 다른 요구르트를 사두었는데 그거 먹으면 안 될까?” 아이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국 엄마의 간식은 순식간에 세 아이들 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평소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사다놓고 아이들이 잘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들과 함께 먹어도 좋겠지만 그러려면 배로 많이 사야 하는 데다, 같이 먹다보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간식거리를 숨겨놓은 날이면 그게 뭐라고 ‘아이들 얼른 재우고 먹어야지’하는 생각에 저녁 내내 행복하다. 나름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랄까. 한데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사라졌을 때 그 낭패감이란.

‘제 새끼가 먹는 건데 엄마가 뭐 그리 아쉬우냐’고 의아할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란 자고로 그 맛난 자장면도 싫다고 마다하며 자식에게 다 양보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하지만 최근 한 패스트푸드점 광고에서 나오는 어머니처럼 자장면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해서 ‘어머니는 자장면을 쳐다도 안 봤어(광고 카피)’면 모를까, 엄마라고 마냥 양보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엄마도 맛있는 게 있고 혼자만 먹고픈 것도 있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종종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는 헌신적 모성애를 잠시 접어 두고 싶다.

한데 아이들이 크면서 아이들과 나의 공동‘식이’구역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엄마와 아이들 먹을거리는 전혀 별개의 구역이었는데, 갈수록 그 교집합이 커진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애의 경우 어른 음식 중 못 먹는 것이라곤 커피, 술, 그리고 아주 매운 반찬에 불과할 정도다.

여기에 아이들 식욕까지 나날이 왕성해지니 ‘내 식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넷째를 출산하기 전 애들 셋을 데리고 복합쇼핑몰에 놀러간 적이 있다. 구경을 마치고 지하 푸드코트에 내려가 아이들과 내 점심용으로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3개와 캘리포니아롤 1줄을 샀다. 오니기리는 아이들을 주고, 캘리포니아롤은 내가 먹을 생각이었다.

롤 포장을 뜯고 있는데 첫째가 “엄마, 그 롤 내가 먹으면 안돼요?”하고 물었다. 서너 쪽이나 먹겠지 싶어 흔쾌히 “그래” 했건만 웬 걸. 첫째는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새 롤 한 줄을 뚝딱 먹어치우고 말았다. 오히려 그것으로는 배가 덜 찼는지 남은 오니기리까지 넘봤다. 하긴, 벌써 몸무게가 28kg를 육박하는 어린이인데 서너 쪽만 먹을 거라 기대한 내가 바보지. 결국 첫째에게 오니기리 반쪽마저 내주고 만삭인 나는 과일 스무디 한 컵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첫째에겐 못 미치지만 둘째와 셋째도 과거와 비교하면 먹는 양이 크게 늘었다. 특히 연년생인 이 녀석들은 뭐든 서로 경쟁을 하듯 먹는다. 둘째에게 요구르트를 주면 셋째도 “나도 요구르트 줘!”하고, 셋째가 치즈를 달라 하면 둘째도 “나도 치즈 먹을래!” 한다. 엄마가 무언가 먹으려고 꺼내 놓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나도” “나도” 하며 달려온다. 이러니 가공식품 같은 것은 4개들이를 사놔도 단숨에 사라지기 일쑤다. 오죽하면 내가 간식거리를 반찬통 뒤에 숨기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물론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특히 입 짧은 아이를 키우며 맘고생 해본 부모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만해도 불과 얼마 전까지 식사 때면 아이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걸복걸 하며 쫓아다녀야 했다. 어릴 적 첫째는 얼마나 작고 말랐던지 “마치 마이크 같다”고들 했다. 막대기 같이 마른 몸에 동그랗고 커다란 머리가 붙은 모습이 꼭 음향기기인 마이크 모양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잘 먹기만 한다면야 내 간식은 물론 간(肝)까지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입에 넣는 것 없이, 옥수수를 쪄도 고구마를 구워도 애들 입에 넣기 바빴다.

나도 찐 옥수수와 군고구마를 무척 좋아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옥수수 한 쪽, 고구마 반 개 덜 먹는다고 크게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왜 내 입에 들어가는 건 그리 아깝고 사치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괜찮아”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이런 말들로 엄마는 마냥 이렇게 포기하고 희생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오히려 내 아이들에게 더 나쁜 양분을 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가 잘 먹고 건강해야 육아도 행복하고 즐거울 테다. 요즘은 옥수수 두 개를 찌면 네 쪽으로 나눈 뒤 “이 한 쪽은 엄마 거야” 하고 빼놓는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가사에도 일침을 날리고 싶다. “어머니, 한 젓가락 먹는다고 큰 차이 없어요. 어머니도 드세요.”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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