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천국’ 유럽마저…꿈 대신 돈 꾸는 대학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1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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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한 특수대학에서 마사지-물리치료사 학위를 공부 중인 요한은 지난해 은행으로부터 1만 유로(약 1300만 원)를 빌렸다. 내년에 또 돈을 빌릴 계획이다. 학비가 공짜에 가까운 공립대와 달리 특수학교는 등록금이 비싼 데다 임대료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교통비와 통학시간을 줄이기 위해 파리 시내에 14㎡ 크기의 원룸을 빌렸는데 임대료만 600유로(약 78만 원)다. 요한은 “할머니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주말에 일을 하면서 은행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내년에는 더 빌려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프랑스 대학생총협회(FAGE)에 따르면 신학기가 시작되는 지난달 파리에 사는 20세 대학생의 평균 지출액은 2240유로(약 291만 원)에 달한다.

파리 근처 세르지에서 대학에 다니는 로망 리샤르 씨는 학교에서 도보로 2분 거리의 집에서 친구 3명과 함께 산다. 임대료는 월 600유로로 저렴한 편이다. 그래도 작년보다 50유로(6만5000원)가 올랐다. 파리 외곽에 살다 보니 생활비를 벌거나 여가를 즐기기 위해 파리에 나갈 때 교통비가 부담이다. 파리에 한 번 나가려면 교통비가 6.15유로(약 8000원)나 든다.

대학 등록금이 낮고 정부의 생활보조금이 높아 ‘학생의 천국’으로 불렸던 유럽 젊은이들마저 최근 높은 생활비의 부담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경제호황 덕분에 청년 실업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그 때문에 집값이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가면서 집세, 교통비, 등록금 등 생활비 지출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 결과 대학생들의 생활은 궁핍해지고 사회 진출을 앞두고 빚만 늘어나고 있다. 꿈 대신 돈을 꾸는 게 현실이다.

프랑스 학생들이 자주 찾는 대학가 부동산 임대사이트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파리의 원룸 평균 임대료는 872유로(약 113만 원)로 2010년 이후 8년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방 2개인 집의 임대료는 평균 1485유로(약 193만 원)에 달한다. 프랑스 전국대학생연합(UNEF)의 8월 조사에 따르면 집 임대료가 전체 생활비의 54%를 차지하며 대학생들의 평균 생활비용은 지난해보다 1.3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학기마다 300유로(약 39만 원) 수준의 낮은 등록금을 내는 독일 대학생 역시 가장 큰 경제적 스트레스는 집세 상승이다. 독일경제연구소(IW)는 8일 “베를린 대학가 아파트의 임대료가 1년 전에 비해 9.8%, 8년 전에 비해서는 무려 67.3% 올랐다”며 “전국적으로 대학가 아파트 임대료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고 발표했다.

식비(월평균 68유로), 교통비(월평균 94유로) 등 필수품 가격도 오르면서 쇼핑이나 레저비 등 여가를 즐기는 데 쓰는 돈은 월평균 123유로(약 16만 원)에 불과하다. 2012년(150유로)에 비해 더 줄어들어 생활은 팍팍해졌다. 저소득층 부모를 둔 학생에게 매달 최대 649유로(약 84만 원)까지 지원되는 정부 지원금 혜택을 받는 학생 수도 2012년 44만 명에서 2016년 37만 명으로 점점 줄고 있다. 정부는 지원금을 27세까지만 지급하는데 학생들의 나이가 점점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학생 75%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는 2003년 이후 최고 수치다.

파리와 베를린 대학가 임대료가 올라가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탓이 크다. 2001년 28만 명이던 파리 대학생 수는 현재 34만 명으로 늘어났지만 주택 공급은 제자리다. UNEF는 “집세 폭등 지역은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하고, 학생들을 위한 교통 할인 제도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록금 압박에 집세까지 비싼 미국 대학생들은 빚더미에 깔린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낮은 청년 실업률을 연일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빚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전했다. 올해 2분기 미국 학생들의 빚은 1조5300억 달러(약 1720조 원)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157%나 올랐다. 지난 11년 동안 총 대출액이 1% 줄어든 부동산, 카드 대출과 비교되면서 장기적으로 학생 대출이 미국 경제에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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