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제 인생작을 올릴 겁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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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 영화배우 신성일 인터뷰
“신성일 왔다니까 영화는 안보고 나만 봐”

인터뷰는 17일 오후 그가 머무르고 있는 전남 화순의 요양병원에서 함께 점심으로 김밥을 먹으며 진행됐다. 다소 지친 듯 보였던 그의 얼굴은 영화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생기를 찾아갔고, 새 작품을 설명할 때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목소리 톤마저 높아졌다. 이 대목에서 그는 천천히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 냈는데…. 밥풀마저 소품처럼 느껴진 건 왜였을까? 화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인터뷰는 17일 오후 그가 머무르고 있는 전남 화순의 요양병원에서 함께 점심으로 김밥을 먹으며 진행됐다. 다소 지친 듯 보였던 그의 얼굴은 영화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생기를 찾아갔고, 새 작품을 설명할 때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목소리 톤마저 높아졌다. 이 대목에서 그는 천천히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 냈는데…. 밥풀마저 소품처럼 느껴진 건 왜였을까? 화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 영화배우 신성일(81). 입가에 묻은 밥풀마저 영화 소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남자. 은발의 노신사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멋있었다. 암 투병 중인 그는 지금 지인이 운영하는 전남 화순의 한 요양병원에 머무르면서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인생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볕이 좋았던 17일 오후 그는 세 시간에 걸쳐 새 작품과 그의 인생, 그리고 우리 영화계 모습에 대해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만희 감독과 함께 만든 ‘만추’(晩秋·1966년)란 영화가 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필름이 없고 북한에 남아 있다”며 “남북한 교류가 활발해져서 평양에 갈 수 있다면 그걸 꼭 복사해서 갖고 오고 싶다”고 말했다. 》

―건강은 어떠신가요.

“아, 잘 지내요. 몇 달 전부터 지인이 운영하는 여기 전남 화순의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곳 공기가 참 좋아요. 제가 주연했지만 못 봤던 영화도 보고 있고… 지난주에는 ‘여·여·여’를 봤지요.” (방에서 혼자 보시나요?) “아니요. 병원에서 여럿이 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줘서 거기서 보지요. 광주에 사는 아는 동생들이 지인들과 찾아오면 함께 봅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 상영하고 있는데 이번 주는 강대진 감독의 ‘가로수의 합창’, 다음 주는 김기 감독의 ‘가버린 사랑’을 틉니다.” (주연 작품인데 못 보신 게 있으십니까?) “그땐 너무 바빠서…. ‘맨발의 청춘’도 못 보다가 다른 영화 촬영 중에 시간이 나 극장에 들어갔지요. 2층에 앉았는데 신성일하고 엄앵란이 왔다니까 관객들이 영화는 안 보고 우리만 봐서 바로 나오기는 했지만요. 하하하.”

김기영 유현목 정진우 감독이 옴니버스식으로 제작한 ‘여·여·여(女·女·女)’는 그가 최은희 김지미 문희 등 세 여인과 겪는 기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소자 관람 불가. 이곳 엘리베이터에는 그가 주연한 작품의 상영 일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는 이 요양병원의 명예원장도 맡고 있다.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3년 전부터 기획을 하고 있었는데 병 때문에 잠시 미뤘었죠. 시나리오는 나왔는데 작품에 맞게 약간 수정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진작가와 그의 두 사위, 외손녀 등 가족 이야기죠. 이야기를 풀어나갈 중심 장소도 이미 봐 둔 곳이 있고요.” (어떤 역이신가요?) “저는 아날로그 세대인 할아버지 사진작가 역이죠. 스마트폰도 거의 안 쓰고 가능하면 유선전화를 쓰는…. 디지털 세대인 첫째, 둘째 사위 역에는 안성기와 박중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후배들이지요. 외손녀 역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오디션을 볼 겁니다.” (안성기 박중훈 씨가 승낙을 하셨나요?) “전화로 반승낙은 받았지요. 시나리오 완성본은 이달 말쯤 나오니까.”

―제목이 정해졌나요? 가제라도….


“처음에는 ‘행복(happiness)’을 생각했는데 이장호 감독이 누군가 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가제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했어요. 난 그게 마음에 듭니다.”

―상대 여주인공이 누군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감독과 아들딸들과 이야기하는데 문숙 씨를 추천하더라고요. ‘태양을 닮은 소녀’라고 이만희 감독의 1975년 작품인데 데뷔작을 저하고 같이 했지요. 전 그 여인의 자연주의적인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듭니다.” (선생님의 아내 역인가요?) “네. 그런데 제가 이 감독에게 ‘우리 둘이 너무 엇박자 아니냐’고 했더니 ‘형님, 엇박자 가지고 하모니 한번 만들어 봅시다. 둘째 부인으로 하죠’ 그러더라고요.” (왜 하필 둘째 부인으로…?) “화면으로 보면 저하고 문숙 씨가 차이가 많이 나요. 정상적인 노부부로 잘 보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첫째 부인은 죽은 걸로 하고…. 작품에 대한 감독의 이미지가 팍팍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선생님, 매우 부럽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그의 방 앞 복도에 걸려 있는 영화 ‘만추’ 동판.
그의 방 앞 복도에 걸려 있는 영화 ‘만추’ 동판.
“매년 참석했어요. 감옥에 있는 2년만 빼고…. 아, 감옥에서 나온 해도 미안해서 못 갔고…. 그 세 번만 빼고는 다 갔죠. 작년에는 제 회고전도 열렸고…. 사실 이번 작품도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입니다.” (촬영은 언제쯤 시작됩니까?) “내 건강이 회복되는 때를 내년 5, 6월 정도로 보고 있는데…. 아마도 그때쯤 크랭크인을 할 겁니다. 출품작이 되려면 7월까지는 어떤 작품이라는 걸 알려줘야 하니까요.”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3, 4개월이면 충분해요. 제가 제작을 해봤지만 대작이 아니면 오래해 봐야 돈만 많이 드니까…. 10월에 개막이니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빨간색 포드 머스탱을 몰고 박정희 대통령 차를 추월했다는데 사실입니까.

“하하하, 누가 재미있게 쓴 거지 어떻게 대통령 차를 추월하겠소. 그땐 시간만 있으면 머스탱 몰고 대전, 추풍령까지 돌고 왔지요. 서울에서 추풍령까지는 개통돼 있었고, 그날 추풍령에서 부산까지 뚫린 거니까. 박 대통령 행렬은 부산에서 올라오고 나는 서울에서 내려갔으니 추월이 아니고 지나친거죠. 추풍령휴게소 근처인데 저쪽에서 대통령 행렬이 껌뻑껌뻑 불 켜고 올라오고 있더라고? 어떤 행렬이란 건 알았지요. 라디오로 생중계 중이었으니까. 그 옆을 시속 백 몇십 km로 휙 지나친 거죠.”

―서슬 퍼렇던 시절인데 별일 없었습니까.

“며칠 후 시내에서 박종규 경호실장하고 점심을 먹는데 ‘동생, 나 그날 동생 차 지나가는 거 봤어’ 하더라고. 내 차를 본 적은 없지만 외제차 샀다는 소문은 들었으니까 차 보고 안 거죠. 제가 엄청난 속도로 ‘씽∼’ 지나가니까 박 대통령이 ‘저거 누구야?’ 하고 물어서 ‘영화배우 신성일입니다’라고 했답디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이 ‘그 친구 오래 살라고 해’ 했다더군요. 사고 내지 말고 조심하란 뜻인데… 참 어른스러움이 묻어 있는 말이지요. 별일은 없었어요.” (얼마나 빨리 달렸길래…) “부산까지 두 시간 반 걸렸으니까…. 지금도 좀 달립니다.” (지금도요?) “제 버릇 어디 가겠소?”

―원래 겁이 없으신가요. 1980년 신군부의 국회의원 제안도 면전에서 거절했다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전 청와대에 갔을 때 먼발치에서 이미가 훌렁 벗겨지고 머리가 되게 큰 친구가 가끔 눈에 띄었어요. 나중에 보니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이더라고. 1979년 12·12쿠데타가 벌어지고 이듬해인데 하루는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받으니 저쪽에서 ‘선배님, 저 전경환입니다’ 하더군요. 청와대 한 번 다녀가라고…. 갔더니 ‘국회의원 한번 하시면 안 좋겠냐’고 합디다. 첫마디에 ‘안 한다’ 하고 나와 버렸지요. 형님으로 부르던 당시 주영복 국방부 장관과도 절연했고….” (왜요?) “1980년 어느 날 장관 공관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는데 얘기 중에 전두환이 대통령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두환이 되면 나라 망한다’고 했더니 안색이 확 바뀌면서 ‘그런 말하면 너 혼난다’고 하더군요. ‘혼내라’고 하고 뛰쳐나왔지요.” (그러면 찍혔을 텐데요?) “찍혔으니까 그 뒤에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진 거 아니오. 일 년에 한 편? 두 편? 찍었으니까. 영화도 다 죽어버리고….”

―그때도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이 수두룩했는데 왜 거절했습니까.

“그땐 전두환의 민정당이 집권할 게 확실했으니까 승낙했으면 국회의원을 몇 번은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게 끝난 뒤에는 내가 뭐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듭디다. 그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역사의 심판대에 섰을까요?) “하하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겠지. 그래서 안 한다고 했지요. 그들이 광주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요즘 영화계에 아쉬움이 있는지요.


“아쉬움이 많으니 ‘소확행’을 만드는 거지요. 말이 났으니까 그렇지만 모 감독은 연기 지도한다고 여배우 뺨을 때렸다는데 그게 무슨 감독이오? 후배들 다 못 쓰게 만들고…. 나는 액션 영화는 많이 안 했어도 맞고 넘어지는 장면은 숱하게 했는데, 진짜 맞았다면 내 턱이 남아났겠소? 카메라 앵글로 (맞는 것처럼) 잡아주고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그걸 연습하는 거지…. 진짜 맞는 게 무슨 훈련이야? 나쁜…. 그러면 안되는 거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이만희 감독과 함께 만든 ‘만추(晩秋·신성일 문정숙 주연·1966년)’란 영화가 있는데 참 좋은 영화지요. 근데 필름이 이제는 우리나라에는 없고 북한에만 있어요. 김정일 애장품으로…. 나는 한 장면이 새겨진 동판만 갖고 있지요.” (왜 국내에는 없습니까?) “당시에는 영화 필름 보관에 대한 개념이 약해서 전부 잘라서 밀짚모자 테두리로 썼으니까…. 일부가 당시 홍콩에 수출됐는데 김정일이 영화광이다 보니 그걸 사갔다고 하더군요.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 감독이 김정일 소장 영화 목록에서 그걸 봤대요. 남북한 교류가 활발해져서 평양에 갈 수 있다면 그걸 꼭 복사해서 갖고 오고 싶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신성일#맨발의 청춘#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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