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파롤린 원장 “한반도에 ‘평화’ 단어 울려퍼지게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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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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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 강론

바티칸 교황청의 국무총리격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은 17일(현지시간) 오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열었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이날 미사 강론에서 “다시 한 번 하느님께 온 세상을 위한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고자 한다”며 “특별히 오랫동안의 긴장과 분열을 겪은 한반도에도 평화라는 단어가 충만히 울려퍼지도록 기도로 간구하자”고 말했다.

이날 미사 강론은 파롤린 국무원장이 첫 문단만 이탈리아어로 언급하고 나머지는 우리나라 서울대교구 장이태 신부가 읽었다.

미사 참석자 대부분이 타국 참석자일 경우, 해당국에 맞게 배려가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미사 강론 전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강론
2018년 10월 17일, 성 베드로 대성전

대통령님, 주교직과 사제직 안에서 형제인 사랑하는 주교님들과 신부님들, 정부와 외교단 귀빈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요한 복음서 저자는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첫번째로 나타나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장 19절)라고 인사하시는 주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이 있던 날 저녁, 주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희생을 완전히 받아들이시며 박해자들의 손에 자신을 넘기시기 전에 해주셨던 이와 비슷한 말씀을 이미 들은 바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작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주님께서 참된 생명과 충만한 기쁨을 찾는 사람의 마음 속에 선사하시는 평화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부활의 권능에 십자가의 희생을 하나로 잇는 영적인 신비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이 저녁, 우리는 겸손되이 역사와 인류의 운명을 다스리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시선을 들어 올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느님께 온 세상을 위한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랫동안의 긴장과 분열을 겪은 한반도에도 평화라는 단어가 충만히 울려 퍼지도록 기도로 간구합시다.

본 전례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신명기의 저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이중적 경험에 대한 회상을 들었습니다. 그 이중적 경험 가운데 하나는 “축복”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주”에 대한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면 […]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

성경의 지혜는 오로지 당면한 고통, 불가항력적 현실, 증오 앞에서 하느님의 표면적 부재라는 불가해한 신비를 체험한 사람만이 다시 평화라는 말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듣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다른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물론 알고 있듯이, 우리도 평화가 매일의 선택들, 정의와 연대의 봉사를 향한 진지한 책임 그리고 인간의 권리와 품위에 대한 증진, 특별히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약한 이들에 대한 배려로 이룩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이에게 평화는 무엇보다도 저 높은 곳, 즉 하느님 자신에게서 오는 선물입니다. 나아가 평화는 예언자들이 평화의 왕이라고 선언하셨던 하느님 현존의 충만한 현현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평화가 추상적이거나 저 멀리있는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삶의 매일의 여정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경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에게 오는 평화는 “고난 가운데서의 평화”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약속하실 때, 다음의 말씀도 하신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사실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듯, 세상은 자주 “우리가 생의 다른 면의 현실인 십자가를 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마취합니다.” 바로 이 이유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시는 평화는 단순히 지상적이기만한 기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또한 이 평화는 어떤 단순한 타협의 결과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삶의 모든 차원, 즉 십자가와 우리 지상 순례에서 피치 못하게 따르는 고통이라는 신비로운 차원들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현실입니다. 이 까닭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에게 “십자가 없는 평화는 예수님의 평화가 아니다.”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기쁜 축제의 날이었던 지난 주일 성인의 반열에 오르신 성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1968년 1월 1일을 제1차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하시면서, 성 요한 23세 교황님의 몇몇 말씀들을 취하시어, 모든 천주교 교우들과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평화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상이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건설하며, 평화를 방어하도록 그리고 오늘날 되살아나고 있는 전쟁을 야기할 수도 있는 상황들에 맞서도록 세상을 교육해주어야 합니다. […] 우리 시대의 사람들과 다가올 세대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진리와 정의, 자유와 사랑 위에 세워지는 평화에 대한 감각과 사랑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능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오늘날의 세상 안에서 구현해야 하는 참된 사명인 화해의 은총을 주님께 청합시다.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용서의 길은 가능해지고, 민족들 가운데에서 형제애를 선택함은 구체적인 것이 되며, 평화는 세계 공동체를 이루는 주체들의 다름 안에서도 공유되는 전망이 됩니다.

“그리하여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이제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올려져,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마침내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고귀한 선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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