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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매혹시킨 미드, 나무책상뿐인 작가의 방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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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매혹시킨 미드, 나무책상뿐인 작가의 방에서 시작됐다

조윤경 기자 , 김민 기자 입력 2018-10-15 03:00수정 2018-10-1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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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대 문화전쟁 글이 무기다]<1>‘하우스’-‘굿 닥터’ 작가 데이비드 쇼어의 집필실 《 6226억 달러(약 705조5000억 원). 최근 영국의 다국적 회계컨설팅 회사 PwC는 2020년 세계 방송·영화 시장 규모를 이렇게 내다봤다. 2011년 약 4495억 달러였던 시장은 10년도 안 돼 39%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온라인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발달과 모바일 시대에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영상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급변하는 21세기 문화시장은 첨단 기술과 스타 배우,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는 글로벌 전쟁터다.

동아일보는 초국적 문화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기 위해 4개월간 3개 대륙의 콘텐츠 제작 현장을 발로 뛰었다. 콘텐츠 강대국 미국과 영국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를 찾아 현지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창작자들을 만나 속내를 들었다. 놀랍게도 세계 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은 첨단 기술과 자본, 스타 배우보다도 다시 ‘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출발은 ‘이야기’이며, “백지 위 검은 글”이 문화전쟁의 핵심 무기인 셈이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를 세계에 알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영국 작가 마이클 돕스의 1989년 동명 소설에서 출발했고, 방탄소년단이 한글로 이야기하는 솔직한 가사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총성 없는 전쟁의 뜨거운 전장을 10회에 걸쳐 소개한다. 》
 
세련된 인테리어에 온갖 자료가 갖춰진 화려한 공간을 기대했다.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로 수천만 시청자를 사로잡는 콘텐츠를 만드는 공간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취재팀이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의 이 건물, 그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26m²(약 8평) 남짓한 사무실은 평범한 나무 책상 하나뿐. 벽에 걸린 ‘굿 닥터’ 포스터가 아니면 발길을 돌릴 뻔했다. 이곳은 미국 유명 드라마 작가, 데이비드 쇼어의 작업실이다.

쇼어는 NBC 법률 드라마 ‘로 앤드 오더’와 FOX 의학 드라마 ‘하우스’ 등을 만든 거물이다. 대표작 ‘하우스’는 수사물의 전개 방식을 의학물에 접목해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쇼어에게 2005년 에미상 각본상까지 안겨줬다. 최근작 ‘굿 닥터’는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미국 내 본방송 시청자 수가 매회 1000만 명을 오갔다.

그런 그를 만나 보니 장시간 모니터와 씨름한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대화가 잠시 끊길라 치면 “이제 다 됐나요”라고 재촉했다. 일에 몰두하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다. 그러나 글에 대해 묻는 순간, 그의 눈은 매서워졌다.

“글이 전부죠. 대본이 좋으면 드라마도 좋고, 대본이 평범하면 드라마도 시시해요. 내 일의 90%는 대본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관리하는 겁니다.”

○ 영상의 설계도 그리는 작가 센터
미국에선 촬영 수개월 전부터 작가 센터(Writing Center)가 꾸려진다. 작가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개인 공간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공용 회의실이 마련돼 있다. 겉모습은 평범해도 드라마의 모든 요소가 결정되는 공간이다. 쇼어와 함께 일하는 9명의 ‘굿 닥터’ 작가진은 각자의 집필실을 가지고 있으며, 매일 함께 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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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각자 쓰고 토론을 함께 하죠. 가장 큰 스토리라인을 정하고, 다시 구체적 아웃라인을 정한 뒤 대본은 나눠 씁니다. 대본을 최종 검토하고 조정하는 건 제 역할이에요.”

‘쪽대본’으로 촬영하는 국내와 달리 할리우드는 사전 제작이 원칙이다. 이 때문에 여유로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촬영 시간이 곧 돈이므로, 제작비를 아끼려면 탄탄한 글로 쌓아 올린 설계도가 필수다. 쇼어의 하루는 이 설계도를 만들며 저글링을 하듯 필요한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으로 이뤄진다.

캐스팅부터 전체 구조까지 모두 글로 기록되고 계획된다. 이 계획서를 무시하고 감독 재량으로 찍는 일은 없다. 현장의 감이나 운에 맡기는 게 아니라 작가들이 머리를 모아 사소한 것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작가의 힘은 연출가보다 막강하다. 할리우드 1급 작가들은 최소 회당 60만 달러(약 6억8000만 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쇼어는 “연출자들이 작가와 장면을 찍는 방식을 두고 논쟁하는 일은 없다. 여기선 작가가 보스고, 내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연출자들도 그걸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쇼어는 제작진이 6편을 촬영하는 동안 7편의 프리프로덕션 작업을 했다. 배우 캐스팅과 장소 섭외 등 모든 세세한 일정을 잡는 걸 뜻한다. 다른 작가가 집필한 8편이 일관성을 갖추도록 다시 쓰고, 이미 촬영을 마친 4편의 편집도 제어했다. 여기에 10편의 방향을 잡는 일까지 동시에 했다.

“마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불 끄는 소방수 같다니까요.(웃음)”

○ 의사는 소재일 뿐,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

작가진 토론이 치열해지는 건 인물을 현실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다. 예를 들어 ‘굿 닥터’ 주인공 머피와 멜렌데즈가 싸우는 장면에선 작가들이 캐릭터 입장에서 변호를 시작한다. ‘멜렌데즈는 자신의 말을 후회했을 거예요’ ‘착한 머피가 더 상처받았을 것 같은데…’ 등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간다.

“이런 토론은 그들이 현실 속 인물처럼 보이도록 피와 살을 붙이는 작업이에요. 단순한 갈등이나 에피소드보다, 그들의 입장을 반영한 구체적 상황이 필요하죠.”

쇼어는 ‘굿 닥터’를 드라마 파일럿 행사에서 만났다. 매년 7∼10월 미국 방송계의 피칭 시즌에는 주요 방송사가 400여 편의 기획을 듣는다. 이때 선택한 작품에 방송사는 수십억 원을 투자해 파일럿을 제작한다.

쇼어는 ‘굿 닥터’에서 마음을 움직일 보편적 이야기를 봤다. 그의 머릿속엔 ‘왜 어떤 사람들은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하우스’도 ‘굿 닥터’도 저는 의학적 내용엔 관심 없어요. 중요한 건 좋은 캐릭터와 거기서 나오는 인간의 단면이에요. 제 쇼는 인간은 왜 그렇게 사는지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로 앤드 오더’를 쓰기 전 그는 변호사였다. 어릴 적부터 꿈꿨지만 막상 되고 나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작가로 일하던 친구를 보며 새로운 도전을 마음먹었다. 그런 쇼어가 생각하는 좋은 드라마의 필수 요소도 바로 인물, ‘캐릭터’다.

“윤리에 늘 관심이 있어요. 인생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람들이 왜 특정한 행동을 하는지가 궁금해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에 저는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지자 작가 센터의 조용한 열기는 점점 더 달아올랐다. 글쟁이들의 고독한 싸움을 위해 자리를 피해줄 시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사랑하나요?”

쇼어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저는 엄청난 프라이드를 갖고 있어요. 누군가의 요구에 맞춰 창작하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죠. 그러나 그 보상은 달콤하고, 그 일을 해낸 저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로스앤젤레스=조윤경 yunique@donga.com / 김민 기자
#수천만 매혹시킨 미드#데이비드 쇼어의 집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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