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형준]억울함과 열정을 담아, 오늘도 웹툰을 그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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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산업1부 차장
박형준 산업1부 차장
웹툰을 그리는 기맹기(필명·24·여) 작가. 경남 창원에서 보낸 유년 시절, 언니 둘 중 첫째 언니가 유난히 만화를 좋아했다. 밍크, 찬스 같은 만화잡지가 항상 집에 있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생일 때부터 ‘커서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접 만화를 그려 보곤 했다. 주로 판타지 만화였다.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더니 친구들이 “재밌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았다. 웹툰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고교 시절 네이버 도전만화 게시판에 꾸준히 웹툰을 올렸다. 액션 판타지를 그린 작가의 웹툰이 ‘베스트도전만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때부턴 조회수가 수천 단위로 바뀌었다. “내 웹툰을 많은 사람이 본다는 사실에 설렜다. 열심히 그려 40회를 연재했다. 하지만 네이버로부터 정식 연재 제안을 받지는 못했다.”

웹툰 인연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2014년 경기 이천에 있는 한 대학의 만화창작과로 진학했다. 1학년 때 캐릭터 콘셉트를 스케치하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칠판에 ‘강남미인’(된장녀)이라고 주제를 적었다. ‘강남에서 성형하면 왜 된장녀가 되는 거지?’ 반발심이 생겨 그는 당찬 강남미인 캐릭터를 그렸다.

1년 뒤 강남미인 캐릭터를 들고 ‘대학만화 최강전’에 참여했다. 결과는 8강전에서 탈락. 하지만 얼마 뒤 네이버로부터 “강남미인을 정식으로 연재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탄생한 게 ‘내 ID는 강남미인’이다. 네이버와 계약하고 2016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85화를 연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얼마를 벌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액수를 밝히지 않고 “통장에 찍힌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내가 이렇게 큰돈을 받아도 될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짐작하건대 네이버와 계약하고 요일웹툰에 연재하는 작가 약 300명의 평균 연봉(약 2억2000만 원)보다 분명히 많았을 것이다.

과거 만화가는 소위 ‘배곯는 직업’으로 꼽혔다. 공부 잘하는 엘리트가 만화가가 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20대에도 연봉 2억 원 이상 벌 수 있는 게 웹툰 작가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상사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자신의 방이나 카페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웹툰 작가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웹툰 작가가 연봉 2억 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8월 발표한 ‘만화·웹툰 작가 실태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 761명 중 24.7%는 지난해 1000만 원 미만의 수익을 올렸다. 기맹기 작가도 “나는 좋은 플랫폼에서 연재하며 잘된 케이스이고, 연재하는 플랫폼에 따라 적은 수입과 불합리한 계약으로 힘들어 하고 계신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인기 작품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뭘까. 기맹기 작가는 ‘억울함’이라고 말했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남한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걸 만화로 그린다. 억울함을 느끼려면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는 경험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대학을 다녀볼 만하지만, 안 다녀도 전혀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네이버웹툰의 한 팀장은 ‘열정’을 꼽았다. “연재 중인 웹툰 작가 중엔 작가가 되기 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웹툰에 도전한 사람이 많다.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문을 두드리다 보면 성공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참고로 요즘 웹툰 작가들은 20, 30대가 주류이고, 만화 전공자보다는 독학한 이가 많다고 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웹툰#기맹기#내 id는 강남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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