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안정 위해 풀자” vs “국토의 허파 보존을” 팽팽한 신경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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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성역에서 ‘그렇고 그런벨트’ 전락한 그린벨트

《‘집값 안정을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자.’ vs ‘미래 후손용 자산이므로 안 된다.’

폭등세를 보이고 있는 수도권의 집값 안정을 위해선 대규모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같이하면서도 실천방안을 놓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견해를 달리했다. 보전 가치가 높지 않은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서 주택을 짓자는 국토부 요구에 서울시는 후손에게 물려줄 환경자산을 훼손할 수는 없다며 맞섰다. 21일 공개된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은 서울시 주장에 국토부가 한 걸음 물러선 모습이다. 하지만 국토부가 서울시와 그린벨트 해제 방안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힘에 따라 양측의 신경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 국토부… 해제 카드는 여전히 유효

국토부가 서울 지역 그린벨트에 주목한 것은 그동안 내놓은 수요 억제 방안만으로는 집값을 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세금 부과나 대출 제한으로는 이미 불붙은 주택시장을 진정시키기 힘든 만큼 ‘공급 대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가장 손쉽고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주택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 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재개발, 재건축에 따른 개발이익이 일부 계층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탓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그린벨트였다. 서울에서 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린벨트 외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다 그린벨트는 땅값이 싸 토지 수용 등에 들어가는 택지 조성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만큼 분양가를 낮출 수 있어 인근 지역 집값 하락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국토부는 또 집값 안정과 함께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건설 경기는 침체 일로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4대강 사업 등 이전 정부가 벌인 대규모 개발 사업을 ‘적폐’로 몰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예산을 급격히 줄인 결과다. 국토부로서는 그린벨트 개발에 민간자본을 유치해서 아파트를 짓는다면 침체된 국내 건설 경기를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는 서울시 반대로 21일 내놓은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그린벨트 해제 내용을 포함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해제 카드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김현미 장관이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서울 지역 일부 그린벨트를 직권으로 해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향후 발표할 26만5000채 공급 계획 중 20만 채는 서울과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사이에 조성된 택지에서 공급하기로 한 것도 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유효함을 시사한다. 서울과 1기 신도시 사이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할 땅은 사실상 그린벨트밖에 없다.

○ ‘그렇고 그런 벨트’로 만들 수 없다는 서울시


서울시는 그동안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후손에게 물려줄 환경 자산인 그린벨트를 훼손할 수 없다는 게 내세운 명분이었다. 서울시는 대안으로 옛 성동구치소 등 시내 유휴지 개발을 통해 6만2000여 채를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정치권과 부동산 업계에서는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의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그린벨트를 풀었는데도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해제 주체인 박 시장에게 ‘책임론’의 불똥이 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박 시장은 용산과 여의도 개발 방침을 내놓았다가 집값 폭등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경험도 있다. 따라서 섣부르게 그린벨트 해제에 동의하지 않고 충분한 명분을 쌓으려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 전문가 반응은 엇갈려

양병이 서울대 명예교수(전 환경대학원 교수)는 “서울 시내에서 녹지를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그나마 그린벨트가 있어 녹지를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그걸 지금 다 써버리면 미래 세대는 정말 땅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홍철 환경정의 사무처장도 “정부가 전답이나 비닐하우스가 있는 그린벨트는 이미 훼손돼 녹지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도시 확산을 막는 완충지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사람이 사용하지 않고 버려진 그린벨트의 경우 오염원도 많아 해제하고 개발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전 환경대학원 원장)는 “그린벨트는 공기나 지하수 정화, 아름다운 풍경 제공 등과 같은 비금전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며 “개발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전적인 가치와 보존했을 때의 비금전적인 가치를 진지하게 비교한 뒤 개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도예 yea@donga.com·김정훈·송진흡 기자
#집값#그린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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