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지운 자리, 시진핑으로 채우는 중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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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개혁개방 40년, 시진핑 띄우기
첫 경제특구 선전 개혁개방박물관, 덩샤오핑 조각품 習글귀로 대체
부친 시중쉰도 개방 이끈 위인 격상… WSJ “마오시대 개인숭배 부활”

3개월간의 리노베이션 뒤 이달 다시 개관한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서커우중국개혁개방박물관. 입구에 있던 개혁개방 설계자 덩샤오핑 
조각품이 사라지고 “개혁개방 40년 동안 ‘시대를 뒤따라가는’ 데서 ‘시대를 이끄는’ 데로 위대한 약진을 했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글로 대체됐다. 사진 출처 서커우중국개혁개방박물관
3개월간의 리노베이션 뒤 이달 다시 개관한 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서커우중국개혁개방박물관. 입구에 있던 개혁개방 설계자 덩샤오핑 조각품이 사라지고 “개혁개방 40년 동안 ‘시대를 뒤따라가는’ 데서 ‘시대를 이끄는’ 데로 위대한 약진을 했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글로 대체됐다. 사진 출처 서커우중국개혁개방박물관
은퇴한 50대 중국인 자오옌칭 씨는 이달 광둥(廣東)성 선전(深(수,천))시의 서커우(蛇口)중국개혁개방박물관을 찾았다가 놀랐다. 올해 5월 방문했을 때만 해도 박물관 입구에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이 과거 선전시를 찾은 장면을 묘사한 대형 조각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물관은 당시 이 조각품이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리노베이션 뒤 이달 재개장하면서 덩샤오핑 조각품이 박물관 입구에서 사라지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개혁개방 관련 글귀가 적힌 전시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베이지색 벽 위에 “개혁개방 40년 동안 개척할 수 있다는 용기로 자신을 개혁해 새롭고 좋은 길을 개척했다. ‘시대를 뒤따라가는’ 데서 ‘시대를 이끄는’ 데로 위대한 약진을 했다”는 시 주석의 글이 눈에 띄었다.

최근 베이징 국가미술관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전국미술작품전’ 출품작 ‘이른 봄’. 개혁개방 초기 지도부 토론 장면을 묘사한
 이 작품은 덩샤오핑(왼쪽에서 세 번째)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서 있는 이·당시 광둥성 제1서기)을 더 
돋보이게 묘사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최근 베이징 국가미술관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전국미술작품전’ 출품작 ‘이른 봄’. 개혁개방 초기 지도부 토론 장면을 묘사한 이 작품은 덩샤오핑(왼쪽에서 세 번째)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서 있는 이·당시 광둥성 제1서기)을 더 돋보이게 묘사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이 박물관은 개혁개방 4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2월 개혁개방의 상징 선전시에 문을 열었다. 개혁개방은 덩샤오핑이 1978년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화하면서 시작됐다. 선전시는 개혁개방을 위한 첫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리노베이션 뒤 덩샤오핑의 흔적이 사라지고 시 주석이 그 자리를 대체하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중국이 올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시 주석을 높이고 덩샤오핑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라며 “시 주석이 중국의 과거를 넘어 더 위대한 지도자라는 신화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시 주석뿐 아니라 개혁개방 초기 광둥성 제1서기를 지낸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도 개혁개방을 이끈 위인으로 격상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시 주석뿐 아니라 시중쉰의 개혁개방 업적을 칭송하는 전시물들이 등장했다.

홍콩 싱다오(星島)일보에 따르면 최근 베이징(北京) 국가미술관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전국미술작품전’에 시중쉰이 주인공인 미술 작품이 등장했다. ‘이른 봄(早春)’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는 덩샤오핑 등 개혁개방 초기 지도부가 등장한다.

광둥성에서 개혁개방을 어떻게 먼저 진행할지 토론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 한가운데 있는 이는 시중쉰이다. 시중쉰이 지도상의 선전시를 가리키며 자신감 있게 웃고 있는 모습을 덩샤오핑 등 지도부가 올려다보고 있다. WSJ는 “시 주석과 시중쉰 관련 작품이 덩샤오핑과 다른 지도자들을 묘사한 작품들보다 중요하게 전시됐다”며 “2008년 개혁개방 30주년 때 열린 전시회 때는 덩샤오핑 관련 작품이 대부분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런 움직임은 시 주석 집권 이후 덩샤오핑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덩샤오핑은 1인 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집단지도체제 유지를 중시했다. 이를 위해 국가주석의 연임 금지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고 당과 정부의 분리 및 균형을 강조했다. 미국과 맞서거나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도 덩샤오핑의 유지였다.

하지만 시 주석은 올해 국가주석 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했고 당이 정부를 포함해 모든 것을 지도하는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자오옌칭 씨는 WSJ에 “그들(당국)은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마오쩌둥 시대 이후 개인 숭배가 부활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덩샤오핑#시진핑#개인숭배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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