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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산업] “임신? 여자 인생 끝났지” 회사 분위기 돌변…‘경단녀’서 CEO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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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산업] “임신? 여자 인생 끝났지” 회사 분위기 돌변…‘경단녀’서 CEO로

이은택 기자입력 2018-08-21 17:11수정 2018-08-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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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김희원 디지털뉴스팀 인턴

7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양효진 베베템 대표(28)는 화상회의 준비에 분주했다. 베베템은 육아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각종 육아용품의 후기를 모아 순위를 매겨 엄마들이 어떤 육아용품을 구입하는 게 좋을지를 알려준다.

이날 양 대표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일어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전 7시 남편과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인 뒤 오전 9시 30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이후 사무실에 출근한 양 대표의 근무시간은 오후 3시 30분까지다. 어린이집 하원시간에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CEO(최고경영자)’,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 생활이 쉽진 않지만 그는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 덕분에 더 독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용시장에서 약자로만 여겨졌던 엄마들이 아이디어로 창업에 CEO로 변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맘타트업(엄마+스타트업)’의 등장이다. 이 중에는 이전 직장에서 출산 때문에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돼야했던 여성들도 적지 않다. ‘재취업이 어렵다면 직접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다. 이들이 만든 직장에는 재택근무, 엄마 직원 우대 등 새로운 조직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양 대표는 이전 직장에서 인정받는 마케팅 전문가였다. 하지만 입사 1년 만에 결혼과 임신이 이어지자 사내 분위기는 돌변했다. 주변 동료들이 대놓고 “여자가 임신하면 붙박이장 신세”, “여자 인생 끝났다”며 핀잔을 줬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유산 위험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결국 회사를 나왔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멍 하게 지내던 양 대표에게 남편이 말했다.


“효진아, 네가 일할 ‘판’이 없다면 ‘판’을 바꿔봐.”


양 대표는 육아용품을 살 때 마다 주변에 묻거나 인터넷으로 후기를 뒤졌던 경험을 떠올렸다. 여기서 착안해 1년 준비 끝에 개발한 앱이 바로 베베템이다. 현재 안드로이드앱은 약 100여 건이 다운로드됐고 사용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폰용 앱도 이달 내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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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프라임테크를 세운 김윤주 대표(39)도 아이를 낳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김 씨는 ‘휴대용 자외선 살균기’를 만들었다. 손에 쥐는 물건은 무조건 입에 넣으려는 아이 걱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프라임테크 사무실에는 김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도 있었다. 김 씨는 “여름방학이라 아들이 여기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양 대표와 김 대표같은 엄마 창업자는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가 매년 여는 여성창업경진대회는 2015년 응모자가 351명이었지만 올해는 933명으로 늘었다. 한국여성벤처협회외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여성벤처창업 케어프로그램의 지원경쟁률도 2015년 3.1 대 1에서 올해 3.9 대 1로 늘었다. 미국의 창업전문지 앙트레프레너는 ‘엄마 창업자’들의 장점으로 실용적인 사고, 우선순위 배분능력, 멀티태스킹 등을 꼽으며 “가정을 이끄는 것과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엄마들의 창업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김 대표는 투자자나 바이어들 앞에서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혹시 남편사업을 본인 것처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비아냥을 들었다. 양 대표도 투자자를 만날 때마다 “아줌마한테는 투자 안 해요”, “여자라고 또 육아 아이템을 들고 왔네” 등 핀잔을 들어야 했다.

엄마라는 편견을 깨고 창업한 이들은 ‘편견 없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베베템은 직원을 채용할 때 처음부터 육아경력자를 우대한다. 업무도 대표 양 대표를 빼고는 모두 재택근무한다. 프라임테크는 회사차원에서 직원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김진수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여성과 엄마들의 창업을 이제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정하고 정부도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이우연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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