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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씨 “황폐해진 삶의 터전에 ‘마음의 부흥’ 위한 책방 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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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 씨 “황폐해진 삶의 터전에 ‘마음의 부흥’ 위한 책방 열고 싶었죠”

김범석 특파원 입력 2018-08-18 03:00수정 2018-08-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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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오염된 후쿠시마 지역에 서점 낸 在日작가 유미리 씨
7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재일 작가 유미리 씨가 최근 발간한 자전 에세이를 들고 앉아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유 씨가 올해 4월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오다카구에 문을 연 책방 내부 모습이다. 유 씨는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해 친필 메시지(오른쪽 아래)도 적어줬다. “언젠가 한국어로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유미리 씨 제공
“인생은 신기하다. 어디에서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

재일(在日) 소설가 유미리(柳美里·50·사진) 씨는 최근 인터넷 블로그에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인생을 신기하게 만든다고 적었다. 50세 생일을 맞아 남긴 자축 글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토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글과 함께 사진 한 장도 올렸다. 후쿠시마(福島)현 미나미소마(南相馬)시에 있는 간이역인 오다카(小高)역의 모습이다. 이 역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폭발한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반경 20km 구역 안에 있다. 원전 사고 직후 내려졌던 피난 지시는 사고 발생 5년 만인 2016년 7월 해제됐다.

유 씨는 이곳에서 올해 4월부터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방사능 피폭을 우려해 현지 주민들도 떠나는 마당에 거꾸로 후쿠시마현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끄는 힘에 나를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쉰 살에 그는 미나미소마와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맺었다. 회의차 도쿄에 온 그를 7일 인터뷰했다.


○ 50세, 후쿠시마 서점 주인이 되다

유 씨는 1997년 소설 ‘가족시네마’로 일본 대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하며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았다. ‘8월의 저편’ ‘우에노역 공원 출구’ 등의 작품을 내며 소설가로 활동하던 그가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오다카역 인근에 ‘풀하우스’(1996년 발표한 소설 제목)라는 이름의 책방을 내고 서점 주인으로 변신했다. 495m²(약 150평)의 가정집을 개조해 일부를 서점으로 만들었다.

도쿄 남서쪽 가마쿠라(鎌倉)시에 살던 유 씨가 미나미소마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2년 초. 미나미소마의 ‘임시재해 라디오 방송국’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아 매주 금요일 30분 동안 DJ로 활동해 오던 그는 “다른 곳에 살면서 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2015년 4월 이곳으로 옮겨 왔다. 올해 3월까지 방송을 하며 만난 주민만 6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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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째 출연한 한 고교 선생님과 친해지면서 학생들 앞에서 22번이나 강연을 했어요. 피난 지시가 해제되면서 학생들도 원래 터전으로 돌아갔는데 빈집이 많고 저녁이 되면 길이 캄캄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책방을 운영해 길을 환하게 밝혀주기로 했습니다.”

미나미소마시 오다카구의 인구는 2832명으로 지진이 일어난 2011년 3월 당시 인구(약 1만3000명)의 21.7%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절반 이상이 만 65세 이상 고령자다.

○ 마을이 아닌 마음의 부흥

유 씨는 ‘마음의 부흥’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서점을 만들고 싶었다. 쓰나미로 생활 터전이 휩쓸려 간 주민들을 위해 식물 관련 서적, 그릇 도자기 관련 책, 음식 관련 책 등 ‘집 생각’이 나는 책 위주로 배치했다. 손주를 그리워하는 노인들을 위해 동화책, 그림책도 넣었다. 정치 시사 관련 서적은 최대한 배제했다.

서점 내 100석 규모의 무대에서는 매주 유명 작가의 낭독회가 열린다. 다음 달 14∼17일에는 유 씨가 21세 때 쓴 희곡 ‘정물화’의 연극 공연도 열릴 예정이다. 이 작품을 서점 무대에 올리기 위해 그는 왕복 8시간을 할애해 도쿄까지 가서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온다.

연기는 후쿠시마현의 후타바미라이가쿠엔고교 연극부 학생들이 맡았다. “원전 폭발로 학교가 폐쇄됐지만 학생들의 꿈만은 지켜주고 싶었다”는 이유에서다. 원래 있던 학교 터는 원전과 가까워 지금도 접근할 수 없다. 이 학교는 현 내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나 예전과 같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미나미소마에 서점을 낸 것은 작가로서 일종의 사명감이 들었기 때문이냐’고 묻자 그는 “‘가족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가족 같은 것’이라는 표현은 그의 최근 에세이집 ‘인생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에도 등장한다. 그의 어머니, 큰아들, ‘파트너’라고 부르는 동거남 등 4명의 사진에 그렇게 적혀 있다.

○ 협박에도 “나는 한국인”

일본은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제로’를 선언하고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재가동 승인 방침에 따라 2015년 8월 규슈(九州)전력의 센다이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재가동하고 있다.

유 씨는 원전 재가동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정치인들이 휩쓸려 나간 피해 지역 한복판까지 가서 둘러봐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이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서점 운영에 연극 연출까지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소설 집필을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산청을 무대로 한 대하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조만간 산청으로 이사를 하고 한국 대학에 진학해 한국어 공부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그를 ‘이방인’으로 보고 여전히 차별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 반대 시위에 참여해 “이것은 잘못됐다”고 적극적으로 외쳤고, 최근 니가타(新潟)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살인 사건 당시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자 “외국인들의 자녀들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생각해 보라”며 항의 글을 트위터에 적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협박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아들을 불태워버리겠다”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무섭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주변에서는 국적을 바꾸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바꿔야 하죠? 안 바꿔도 이미 미나미소마 주민들과 ‘가족 같은 것’을 만들며 잘 살고 있으니까요.”

‘유미리(柳美里)’는 앞으로도 유미리일 것이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가족시네마#8월의 저편#유미리#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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