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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선 ‘꼴불견’이라 했지만…일상 가득한 ‘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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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선 ‘꼴불견’이라 했지만…일상 가득한 ‘번안’

조종엽 기자 입력 2018-08-17 18:01수정 2018-08-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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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안 사회 / 백욱인 지음 / 364쪽·1만9000원·휴머니스트
“양복쟁이 바지에 대님을 써야 될 건가/…/연미복 입고 당나귀를 타야만 격인가”

1930년대 유행한 ‘꼴불견 주제가’다. 일본과 서양에서 건너 온 근대 문물과 조선의 전통이 식민지 조선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꼴불견’이라며 풍자했다.

새로울 것 없는 얘기지만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로 시작됐다. 일제 강점을 겪은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예술 분야 뿐 아니라 언어, 기술, 학문,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의 식민지적 근대성을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번안’은 원래 특정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바꾸거나, 배경과 인물을 바꿔 현실에 맞는 배경과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다.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인 저자는 번안을 예술 작품 뿐 아니라 사회변동기에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수용자에 맞게 바꾸는 일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번안은 밀가루, 패션, 고무신, 모자, 주택, 라디오, 대중미술, 만화, 유흥업 등 일상 속 문화 전반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근대어, 이 기사를 쓰는 데 사용한 단어에도 일본어 ‘번안’의 흔적이 가득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 사상을 번역하기 위한 개념어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개념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重譯)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건 약이면서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 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도 ‘번안’은 계속됐다. 요즘도 조미료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미원’은 식민지 때 이식된 일본의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산업화 시기 국내 기업들의 손에 재이식된 것이다. 기업들은 1930년대 아지노모토가 조선에서 펼친 광고 방식을 모방하고 상표 디자인과 용기를 차용했다.

이 같은 ‘식민지적 근대성’을 단순히 청산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돈가스’ 역시 애당초 일본이 ‘번안’한 서양 요리로 1930년대 조선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음식이다. 이제 돈가스는 일상의 우리 음식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원천이 서양이든 일본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돈가스의 근원을 확인하고, 변형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 배경과 앞으로 변형할 모양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돈가스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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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대표하는 걸그룹 ‘이시스터즈’의 1964년 앨범 ‘트리오의 금자탑’.(왼쪽) 대히트를 친 타이틀곡 ‘워싱턴광장’을 비롯해 12곡이 모두 번안가요다. 재킷 뒷면에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모은 “‘맥과이어 시스터즈’(오른쪽)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소개 글이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모방에서 독창성도 나온다.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가 1961년 발표한 노래 ‘위를 보고 걷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1963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이시스터즈’가 ‘위를 보고 걸어요’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저자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였던 ‘맥과이어 시스터즈’와도 스타일이 유사한 이시스터즈의 번안 가요 음반은 재즈 연주와 편곡이 아주 뛰어나며 가사의 번역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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