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몰카·안희정 판결 놓고 말다툼”…더 커지는 페미니즘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6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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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A 씨(26)는 최근 여자 친구와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눈다.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이 많은 여자친구는 카페나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A 씨의 의견을 물었다. A 씨는 여자친구의 말에 공감을 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다는 생각도 품게 됐다. 마침내 최근 ‘홍익대 누드 몰카 사건’ 판결을 놓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여자친구는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가해자를 빨리 잡혔고 여성 가해자라 실형이 선고됐다”, “몰카 찍고 보는 건 다 남성인데 이들한텐 한없이 관대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 씨는 “홍대 몰카범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은 자업자득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순 없다”고 맞섰다. 두 사람은 인식의 간격을 좁히기 어려웠다. A 씨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보면 한쪽 성별을 싸잡아 비난하게 돼 감정이 격해질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올해 초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운동이 최근 홍익대 몰카 여성 피고인에 대한 실형 선고,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에 대한 무죄 판결 이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연인이나 친구, 직장 동료, 가족까지도 관계가 소원해지고 소통이 단절되기도 한다.

직장인 이모 씨(28)는 15일 어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TV를 보다가 안 전 지사 재판 관련 뉴스를 봤다. 60대인 어머니는 “저건 여자가 빌미를 준 게 아니냐”고 했고, 이에 이 씨가 “왜 여자가 빌미를 준거냐, 무죄가 나왔지만 위력을 행사한 게 맞고 남녀 권력 관계가 다르지 않냐”고 반문하며 말다툼을 벌였다.

갈등이 깊어져 친구들과 절교를 하게 된 경우도 있다. 대학생 방모 씨(25)는 최근 페이스북에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마녀사냥식 미투 운동은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를 본 지인들 가운데 여성들 상당수가 방 씨와 페이스북 친구를 끊어버렸다. 이들과는 마주쳐도 모른 척 지나가는 서먹한 사이가 됐다. 그는 “미투 운동이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 소통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회사 내에서도 종종 신경전이 벌어진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 씨(31·여)는 회사 간부에게 ‘여직원’이라는 표현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페미니즘 운동을 보면서 용기를 낸 것. 그러나 남성 부장은 “어휴, 무서워. 죄송해요”라며 비꼬는 말투로 대답을 했다. 임 씨는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공감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페미니즘 이슈가 확대되면서 본질에 대한 고민보다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에 ‘공감’을 원하는 여성과 이를 경계하는 남성 간의 갈등, 성적 역할에 대한 세대 간의 인식 차이가 부각되고 있다는 취지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결국 당장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대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윤태 인턴기자 연세대 사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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