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땅 취급받던 달동네, ‘삼양동’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곳이 됐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6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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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서 심재억 씨가 도로(삼양로)가 처음 생겼을 때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지금은 건물 대부분이 새로 지어졌지만 전봇대와 일부 상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0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서 심재억 씨가 도로(삼양로)가 처음 생겼을 때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지금은 건물 대부분이 새로 지어졌지만 전봇대와 일부 상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가게 문을 닫고 종로3가에서 택시를 타면 “삼양동 가주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대신 바로 옆인 미아동으로 가 달라고 했다. 택시에서 졸다 눈을 뜨면 택시는 이미 집과는 거리가 먼 미아동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심재억 씨(55·사진)의 15년 전 기억이다. 삼양동에 사는 게 곧 가난함을 증명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두가 어려웠던 1960, 70년대 남들보다 더 힘들었던 동네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양동의 한 옥탑방에 한 달간 임시 공관을 꾸리면서 최근에는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동네로 거듭났다.

10일 삼양동의 한 대형마트(옛 삼양시장) 앞에서 만난 심 씨는 “개발을 거치며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저녁이면 옆 동네 친구를 불러 막걸리 한잔 할 수 있는 정겨운 곳”이라며 웃었다.

● 공동 수도 쓰던 산동네

서울 강북구 삼양동역 자리. 자전거를 좋아하는 고재영 학생이 자전거쇼를 보이고 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역 자리. 자전거를 좋아하는 고재영 학생이 자전거쇼를 보이고 있다.
삼양동이라는 이름은 1940년대 말 당시 경기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 일대가 서울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지어졌다. ‘삼각산 아래 양지 바른 남쪽 동네’라는 뜻이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봉구와 강북구를 거치면서 미아1, 2동으로 바뀌고 삼양동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삼양동은 2008년 다시 이름을 되찾았다.

삼양동에는 1950년대 말 본격적으로 사람이 몰렸다. 후암동(용산구) 신설동(동대문구) 왕십리(성동구) 등에 살던 이들이 재개발 철거와 홍수에 떠밀려 쫓기듯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빈손으로 쫓겨난 이들은 급한 대로 합판이나 현장에 남은 자재로 판잣집을 지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멘트 ‘반네로’(패널의 일본어식 표현)를 구해다 벽을 세우고 천막을 쳤다. 땅을 동굴처럼 ‘ㄴ’자로 파낸 다음 벽과 기둥으로 삼아 집을 올렸다. 이른바 ‘삼양동 달동네’의 시작이다.

심 씨의 부모님도 이맘때 신설동을 떠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심 씨의 집은 그래도 사정이 나아 집에 우물까지 팠다. 아버지는 삼륜차 서너 대를 굴리며 돈을 벌었다.

“집 하나하나에 번지수가 없어서 무더기로 모아서 몇 번지, 몇 번지 하는 식으로 불렀어요.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옆집에서 말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고, 골목은 좁아서 우산 하나 지나가기가 힘들었고요.”

어린 심 씨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았다. 근처 빨래골에서 가재를 잡거나 기차놀이를 하며 놀았다. 무료 급식으로 나오는 국수를 얻어먹겠다고 몰래 줄을 섰다 들켜 쥐어박히기도 했다. 집집마다 만들어 놓은 철제 빗물통을 몰래 떼어 고철로 팔아먹는 고약한 장난도 해봤다. 하굣길에는 매일 집에 있는 물통을 들고 삼양시장 앞으로 갔다. 고지대까지 수돗물이 공급되질 않아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없어진 삼양시장에 대한 옛 기억도 또렷하다. 동네 할머니들은 시장에서 배달을 했다. 언덕이 많아 배추나 연탄을 가지고 가기 어려운 집에 짐을 가져다주고 몇 백 원씩을 받았다. 리어카도 없어 고무 대야에 짐을 담아 머리에 지고 경사진 길을 올랐다. 나중에 다시 만난 할머니들 중 무릎이 성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다.

● “남은 가난은 걷어내고, 정은 남았으면”

서울 강북구 삼양동 우이신설선 솔샘역 롯데마트 앞길에서 과거 흑백사진으로 동네 설명하는 주민 심재억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 강북구 삼양동 우이신설선 솔샘역 롯데마트 앞길에서 과거 흑백사진으로 동네 설명하는 주민 심재억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70년을 전후로 완장을 찬 철거 팀이 나타나 동네를 들쑤셨다. 덩치가 큰 청년들이 동네 막걸리집에 죽치고 앉아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위협했다. 철거 팀을 나무라는 동네 할머니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밤 10시만 되면 무서워서 밖을 다니질 못했어요.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면 ‘강제 철거를 하러 왔나’ 싶어 불안해하곤 했죠.”

‘버려진 땅’ 취급을 받던 삼양동은 1980년대부터 변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층짜리 벽돌집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땅을 매입해 빌라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반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섞인 주거지역으로 바뀌었다.

가난의 그늘은 아직 남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삼양동에 거주하는 1만2400여 가구 중 1500여 가구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거나 차상위 계층인 것으로 파악된다. 심 씨는 “아직도 연탄보일러를 쓰는 집이 남아 있다. 동네가 깨끗해지고 치안은 좋아졌지만 아직 개발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 동네에 쏟아지는 관심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난한 곳’이라는 편견이 걱정돼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일 때는 ‘삼양동’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곳이 되면 좋겠어요. 가난은 걷어내고 정(情)은 남아야죠.”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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