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개를 지켜라… 개장수와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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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보초 서는 자원봉사자들


10일 오전 11시경. 비포장도로를 10분가량 차로 달려서 산골짜기 방면으로 들어서자 개 수십 마리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기 하남시의 한 건설 공사 현장에 위치한 이곳은 개 임시 보호소. 이른바 ‘개장수’들에게 사육되며 학대를 받다가 긴급 격리 조치된 개들이 모여 있다.

폭염 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자원봉사자 2명이 보호소 입구로 뛰어나와 기자의 신원을 물었다. 개장수들이 빼앗긴 개를 몰래 훔쳐가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감시의 눈길을 뗄 수 없다는 것이다. 봉사자 A 씨(37·여)는 “개장수들이 신분을 속이고 찾아와 개를 훔쳐가기 때문에 차가 지나가면 매번 신원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 24시간 개를 지키는 사람들
10일 경기 하남시의 개 임시 보호소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개 도난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른바 ‘개장수’들이
 불법 사육하며 방치하던 개들을 긴급 격리 조치해 보호 중이다. 하지만 도축 등을 목적으로 개를 훔쳐가는 개장수들이 나타나자 
봉사자들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개들을 지키고 있다. 하남=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0일 경기 하남시의 개 임시 보호소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개 도난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른바 ‘개장수’들이 불법 사육하며 방치하던 개들을 긴급 격리 조치해 보호 중이다. 하지만 도축 등을 목적으로 개를 훔쳐가는 개장수들이 나타나자 봉사자들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개들을 지키고 있다. 하남=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6일 말복을 앞두고 임시 보호소에서는 개를 노리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격리 조치됐던 개 200여 마리 가운데 도난당하거나 입양시킨 개를 제외한 80여 마리가 보호소 안팎을 돌아다녔다. 보호소 안은 개들의 사체와 분뇨, 악취가 뒤섞여 있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10여 명의 봉사자가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6일 새벽 40여 마리의 개를 도난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다. 동물보호단체들은 6월 말 피부병에 걸린 채 굶어 죽어가는 개들을 발견했고, 지난달 초 하남시가 개장수로부터 개들을 긴급 격리 조치했다.

개장수들은 개의 소유권을 주장할 경우 동물학대 등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이 때문에 개를 훔쳐가고 있는 것이다.

개장수들이 일주일에 두세 차례 ‘침투’를 시도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봉사자들은 입을 모았다. 오전 11시 반경 2명의 남성이 탄 1t 트럭이 보호소 앞을 지나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봉사자들이 차량을 응시하더니 부리나케 달려갔다. 다행히 폐지 처리업체 차량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정주 씨(60·여)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오전에만 봉사활동을 하는데 한 달 동안 개장수와 4번 마주쳤다”고 말했다.

‘철통 검문’이 지속되자 개장수들의 수법도 다양해졌다. 낮에 오토바이를 타고 보호소에 사람이 있는지 파악한 뒤 밤에 다시 트럭을 타고 와서 개를 훔쳐가기도 한다. 봉사자 김지영 씨(32·여)는 “자원봉사자라고 속이고 임시 보호소를 염탐한 개장수를 쫓아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 법 사각지대에서 학대받는 개들

개장수들이 개들을 사육하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정부 당국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 때문이다.

개는 ‘가축’으로 분류돼 사육이 가능하다. 하지만 도축과 유통을 규정한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빠져 있다. 이렇다 보니 소나 돼지 등 다른 가축과 달리 정부에서 위생을 점검하기 어렵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식용 개를 유통하면 불법이지만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보니 당국의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고기 식용 금지’ 청와대 국민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고, 청와대는 10일 “가축에서 개가 빠지도록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대한육견협회는 16일 청와대 인근에서 항의집회를 하기로 했다. 반면 동물보호단체 회원 500여 명은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복날은 가라’ 집회를 열 계획이다.

구특교 kootg@donga.com·최지선 기자
김민찬 인턴기자 서울대 미학과 졸업
#개장수#동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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