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함 속에 깃든 한국美… 獨신부가 남긴 교회건축물 185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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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빈 슈미트 신부 40주기 맞아 업적 재조명 활발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성당 건축물은 소박한 외관과 신자를 배려한 내부 공간 구성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6일 등록문화재가 된 경북 칠곡군 왜관성당의 외관(위쪽)과 내부(아래). 문화재청·김정신 명예교수 제공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성당 건축물은 소박한 외관과 신자를 배려한 내부 공간 구성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6일 등록문화재가 된 경북 칠곡군 왜관성당의 외관(위쪽)과 내부(아래). 문화재청·김정신 명예교수 제공
담백한 흰색 외벽은 소박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세 번이나 꺾여 돌아가는 진입 계단을 거치면 긴장감이 점점 높아진다. 성당 내부는 신자 누구나 제단과 가깝게 느끼도록 타원형으로 설계돼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6일 문화재로 등록된 경북 칠곡군 왜관성당(등록문화재 제727호)이다.

경북 김천시 평화성당, 충북 제천시 의림동성당, 전북 전주시 복자성당까지. 소박하면서도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이 성당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 출신 알빈 슈미트 신부(1904∼1978)가 설계했다는 것이다. 알빈 신부의 타계 40주기를 맞아 한국에서 그가 남긴 건축 유산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알빈 슈미트 신부가 한국에 머물 당시 한복 차림에 곰방대를 들고있는 모습. 분도출판사 제공
알빈 슈미트 신부가 한국에 머물 당시 한복 차림에 곰방대를 들고있는 모습. 분도출판사 제공
지난달 19일부터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알빈 신부 특별전’이 3개월 일정으로 열리고 있고,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책 ‘교회건축가 알빈 슈미트’가 최근 독일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이 책을 쓴 김정신 단국대 명예교수는 “알빈 신부는 유럽의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한국 성당에 도입했을 뿐 아니라 화려함을 배제하고 조화로움을 중시한 한국 성당 건축의 모범을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알빈 신부가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37년 한국에 선교사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한국인이 많이 이주해 있던 만주 북간도의 옌지(延吉)교구에 파견됐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1946년 투옥된다. 1949년 독일로 추방된 그는 교회건축가로 본격적으로 변신한다. 당시 독일 사회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3000여 개에 이르는 성당을 재건하면서 현대 종교건축 이론과 시공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이후 알빈 신부는 1958년 김천 평화성당 설계를 시작으로 20년간 한국 성당 건축의 중흥을 이끈다. 1959년 설계한 경북 문경시 점촌동성당은 외부의 사각 기둥이 주상절리처럼 곧게 뻗어 있어 독특한 조형미를 지닌다. 내부 공간은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함으로써 한국적 상황에 잘 맞는 성당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성당 건축물은 소박한 외관과 신자를 배려한 내부 공간 구성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경북 문경시 점촌동성당(위)과 충북 제천시 의림동성당. 문화재청·김정신 명예교수 제공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성당 건축물은 소박한 외관과 신자를 배려한 내부 공간 구성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경북 문경시 점촌동성당(위)과 충북 제천시 의림동성당. 문화재청·김정신 명예교수 제공
1978년까지 20년 동안 알빈 신부는 122개 성당(작은 예배실인 경당,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소규모 성당인 공소 포함)을 포함해 무려 185개 건축물을 설계했다. 김 명예교수는 “알빈 신부는 건물당 10∼15장의 도면을 남겼는데, 그의 도면에는 시공이 가능하도록 기록한 mm 단위의 치수와 성물 제작 방법을 설명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며 “알빈 신부와 협력했던 수사들에 따르면 그의 도면은 별도의 추가 지시 없이 공사가 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고 밝혔다.

알빈 신부의 성당들은 토목 공사를 최소화하고, 주변 대지와 조화를 이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교회에서는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 영원함과 무상함이 함께 만나기 때문에 다양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 특히 건물 외관보다는 내부 공간을 강조했는데 제대와 신자들이 자리하는 회중석을 최대한 가깝게 해 누구나 미사에 능동적이고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명예교수는 “50년이 넘은 성당들이지만 현재도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과 기능적인 요소를 모두 담은 뛰어난 건축물이다”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알빈 슈미트#성당#칠곡 왜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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