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종 前 정무수석 “김병준, 예수 된 심정으로 비대위 이끌어야”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7월 21일 1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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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7월 둘째 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자유한국당(한국당)은 10%를 기록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원내 113석을 보유한 제1야당 지지율이 6석의 정의당과 같았다. 전통적으로 한국당을 지지해온 보수성향의 유권자마저 지지를 철회한 결과다.

한국갤럽의 이념성향별 조사에서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는 22.4%. ‘진보’라는 응답이 32.8%로 가장 높았고 ‘중도’ 28.8%, ‘무응답’ 16.0%였다. 진보와 중도보다 상대적으로 적지만 우리 사회에는 22.4%의 보수성향 유권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의 정당 지지율 분포를 살펴보면 한국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0%에 불과했다. 보수마저 등 돌린 한국당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

7월 18일 김영삼 정부에서 최장수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으로 활동한 이원종 전 수석을 만나 한국당의 진로와 한국 보수정치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한국당을 이끌게 됐습니다.

“당을 해체하는 대신 재정비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한국당 사람들의 선택이죠. 김 교수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지만, 아직은 어떻게 당을 개혁하겠다는 건지 판단이 잘 안 섭니다.”

비대위장으로 선출되자마자 ‘계파, 진영 논리와 싸우다 죽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계파가 생긴 원인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죠. 계파는 정치적 비전을 중심으로 뭉친 게 아닙니다. 누구 쪽에 붙어야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권력다툼의 속성에서 비롯된 거죠. 패거리를 지어 정치적 불이익을 피하고 이익을 보려는 게 계파입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비전을 바로 세우는 것이 계파 문제 해결의 길입니다. 비전 중심이 아니라 계파에 속해 있는 것이 오히려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는 걸 느끼게 만들어야죠. 결국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낼 정치적 비전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문제죠.”

김병준 비대위장은 7월 18일 취임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데 열중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인권, 상생, 평화, 통일 등의 가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보수와 중도 정치권은 가치 점유에서 부실하다는 것. 그는 “가치와 이념 체계를 바로 세우는 일에 얼마나 동참하고 새 정책을 같이 할 수 있는 분인지 여부가 당내 시스템으로 가려질 것”이라면서 “도저히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분이 있으면 길을 달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위적으로는 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가치와 이념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탈락자가 나올 수 있다며 인적청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정치하는 이유 =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

이 전 수석은 한국당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로 ‘어떤 비전으로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정치의 본질은 생각지 않고, ‘누가 권력을 쥐느냐’ 하는 권력다툼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점을 지적했다. 계파만 있을 뿐 이념과 신념을 갖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한국당이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유도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당인 것은 맞는데, 보수를 지향하는 정당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가려 하는지,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해 국민을 설득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가겠다고, 변화된 시대에 높아진 국민 수준에 맞춰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거예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해줄 국민은 없습니다.”

김 비대위장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비대위장이 할 일이죠.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은 그것보다 큰 책임의식이 있어야 그 권한에 맞는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권력만 행사하려 해서는 더 큰 반발에 부딪히게 마련이죠.”

이 전 수석은 “김병준 교수는 예수 된 자세로 비대위장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자기가 뭔가를 이뤄놓고 그 공으로 영광을 보겠다고 생각하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가 한국당 사람들한테 온갖 수모를 당하고 고초를 겪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한국당이 살고 한국 정치도 살아납니다. 비대위장이라는 일 자체가 그래요. 예수 된 심정으로 자기를 버려야 당을 살리고 정치도 살릴 수 있어요. 정치를 살리는 게 곧 국민을 살리는 길이고요. 한국당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데 진력해야죠. 정치를 왜 하는지, 한국당의 존재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보고 국민이 원하는 대한민국 모습을 제시해야죠.”



국민이 한국당에 등을 돌린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는 자부심, 보수로서 긍지와 자긍심을 한국당에게 더는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치를 권력 잡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행태에 국민이 심판을 한 거죠. 한국당 사람 대부분이 정치를 왜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전 수석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곧 정치를 하는 이유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의 기본자세는 공익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겁니다. 국가와 민족에 기여하는 것이 곧 정치하는 이유여야 하죠. 돈 벌고 출세하려는 사람이라면 뭐 하러 정치를 합니까. 사익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장사나 사업을 해야죠. 정치는 멸사봉공의 공직자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공익적 가치를 잘 실현한 정치인과 정치세력에게는 국민이 기회를 더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합니다. 임기가 있고 선거가 있는 정치는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이 전 수석의 ‘정치학원론’ 강의가 이어졌다.

“국가는 잘사는 국민과 못사는 국민,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수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이룬 곳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자신의 이해관계만 내세워서는 안 되죠. 결국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공동체가 함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선거 때 보면 정치의 본질은 어디로 가고 지엽적인 문제만 부각됩니다. 승부에서 이기려고 유리한 것은 극대화하고 불리한 것은 감추려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뜻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유혹을 뛰어넘어야 해요. 제 얘기가 너무 이상적인가요?”

이원종 전 대농령비서실 정무수석은  “야당이 제구실을 못 하면 여당이 분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중식 기자]
이원종 전 대농령비서실 정무수석은 “야당이 제구실을 못 하면 여당이 분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중식 기자]

○절대권력은 절대 분열해

선거에서 떨어지면 뜻을 펼칠 기회가 없으니 기를 써 승리하려고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만 생각하면 다음이 없죠. 선거는 또 찾아옵니다. 지금 당장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해도 자신의 비전과 주장을 좀 더 구체화하고 논리를 탄탄하게 갖춘 뒤 국민을 설득해가면 다음 선거에서 권력을 위임받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게 임기가 있다는 점이에요. 결국 자기 생각을 더 잘 정리해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거죠. 정치는 길게 봐야 합니다. 국민은 포퓰리즘에 한 번은 속지만 두 번은 속지 않습니다. 한국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길게 보고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비전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전 수석의 정치학원론 강의는 ‘리더십’으로 마무리됐다.

“리더십의 요체는 리더가 시대정신을 찾아내 자기 생각을 정리한 뒤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거예요. 제가 모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시절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결국 대선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지했지만 40대 기수론이라는 비전을 내세워 국민으로부터 지지와 동의를 받아낸 거죠. 지금 한국당은 국민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나요.”

김병준 비대위장이 한국당의 혼란과 갈등을 수습하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 비대위장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에 끝나지 않고 한국당의 실패, 한국 정치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등 야당이 참패하면서 야당의 견제기능이 크게 약화돼 정부 여당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야당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집권세력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야당이 제몫을 못 하면 당장은 여당에게 유리하게 보일 겁니다. 그런데 야당의 견제가 없으면 집권세력은 오만해질 가능성이 커요. 그럼 또다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 있죠. 그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야당이 바로 서서 제몫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여당은 스스로 오만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야당은 비전을 제시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야당이 제구실을 못 하면 여당이 분열의 길로 들어설 수 있어요. 절대권력은 절대 분열하거든요. 지금 여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청와대만 보이지, 국가의 주요 정책을 시행해야 할 내각은 보이지 않거든요.”

이 전 수석은 “청와대는 내각에 대통령의 정책 의지를 전달하고, 내각은 대통령의 힘을 빌려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도록 하는 게 대통령중심제의 바람직한 프로세스”라면서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내각보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이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도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 때도 내각이 잘 보이지 않았다”며 “각 부처가 책임지고 정책을 집행한 뒤 잘못되면 책임을 묻고 잘되면 격려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한데, 대통령비서실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면 모든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고 말했다.

○‘이 길이 옳으니 같이 가자’ 동의 구해야

김영삼 정부 때도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된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습니다.

“있었죠. 그런데 그때는 대통령비서실 수석이 직접 정책을 발표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부처를 통해 대통령의 정책 의지가 구현되도록 했죠.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의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하면 장관을 바꿔야죠.”

이 전 수석은 “청와대가 정책을 주도하면 내각이 속으로는 반발하지만 책임질 일도 없어 나태해질 수 있다”면서 “결국 대통령과 청와대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소한 야당과 관계에서는 청와대가 빠져 있는 게 좋다”며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때로 야당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청와대가 나서 야당과 싸우면 국정이 표류하게 된다”고 말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대가 큰 반면, 보수진영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정부는 북한 체제를 건들지 않고도 북한을 개혁·개방 체제로 유도하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올 수 있다 보고 대화와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어요.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옳은 길이라면 걱정하는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 길이 옳으니 같이 가자’고 동의를 구해야 해요. 6·25전쟁을 직접 겪은 우리 같은 사람은 북한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거든요.”

남북, 북·미 사이에 대화 국면이 조성되면서 급한 불은 껐다, 한반도에 전쟁 위험은 제거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저쪽에 다른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죠. 내가 너무 낙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체제가 현 상태대로 유지되기는 힘들 거라고 봐요. 레닌이 공산혁명을 한 지 70년 만에 소련이 망했는데, 3대 세습으로 버티는 북한이 그런 체제로 오래갈 수 있겠어요?”

이 전 수석은 “대한민국의 체제 우월성은 민주주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는 정권을 잡은 세력이 잘하면 기회를 더 주고 잘못하면 선거를 통해 권력을 바꿉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뒤 정권이 바뀐 것은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다시 정권이 바뀐 것도 국정운영 실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적 선택이었고요. 앞으로도 건전하고 생산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보수든 진보든 무슨 소용이 있나요. 어떻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국가와 국민의 번영, 발전을 이뤄내는 길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8년 11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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