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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완준]시진핑식 도광양회는 원자탄 개발전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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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완준]시진핑식 도광양회는 원자탄 개발전략인가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입력 2018-07-17 03:00수정 2018-07-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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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최근 한 중국인과 중국 과학기술부 산하 커지(科技)일보 류야둥(劉亞東) 편집장의 발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류야둥은 지난달 “중국 과학기술을 과장 선전하는 논조와 여론은 국제사회의 중국 위협론에 구실을 준다”고 말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첨단과학기술 제조업 육성 정책 ‘중국제조 2025’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한 것도 중국이 자초한 일이라는 논리가 될 수 있다.

류야둥의 비판이 신선하다고 하자 이 중국인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대뜸 “1964년 중국의 첫 번째 원자탄 폭발 실험 성공 과정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1960년 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처음 중국 핵계획의 존재를 확인한 뒤 미국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갖은 방법으로 중국의 핵개발을 억제하기 시작한다. 외교 압박뿐 아니라 무력으로 중국의 핵시설을 타격하는 방안까지 제기됐다. 1961년 초 미국 공군은 호주 일본 인도 대만 등 중국 주변국에 미국의 공격 핵탄도미사일을 팔거나 대여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심지어 소련(현 러시아) 지도자 흐루쇼프에게까지 중국 핵개발 억제를 위해 협력하자고 제안한다.

문제는 중국이 핵개발 기술을 꼭꼭 감춰 능력이 어디까지 고도화됐는지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다. 정찰기 U-2와 스파이위성인 코로나까지 정찰에 동원됐다. 미국은 중국이 기술 한계로 농축우라늄보다는 플루토늄을 사용한 폭발 실험을 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핵개발 과정에서 통상 겪는 어려움을 감안하면 1964년 말이나 1965년에야 실험할 것으로 봤다. 더 어려운 농축우라늄 폭발은 수년 뒤에야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중국이 폭발실험을 하더라도 미국이 먼저 파악해 동맹국들에 미리 핵실험 사실을 알려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중국은 케네디 사후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인 1964년 10월 16일 오후 3시 기습적으로 원자탄 폭발 실험에 성공한다. 미국 정보당국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플루토늄이 아니라 예상보다 기술 수준이 훨씬 높은 농축우라늄탄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부랴부랴 재선을 위한 경선을 중단하고 같은 달 18일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인정했다. 중국인들은 이를 “미국의 중국 핵개발 억제 책략을 물거품으로 만든 승리”라고 회고한다.

중국의 이런 핵 개발과 지금의 중국제조 2025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대화하던 중국인은 “류야둥의 발언은 중국 당국의 지시에 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 매체들은 어느 순간부터 중국제조 2025 선전을 중단했다. 류야둥 발언의 진짜 뜻은 ‘진짜 기술 수준을 미국이 알 수 없도록 꼭꼭 숨긴 채 하이테크 기술을 발전시켜 미국의 압박 정책을 피해 나가자’는 데 있을 것이란 의미다. 그래야 ‘한동안은 우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안심하는 미국의 중국 억제 전략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시 주석 시대 들어 끝났다던 도광양회(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는 사실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제 원자탄 개발 때처럼 발톱을 감춘 채 첨단기술 발전을 독려할 가능성이 높다. 억제하려는 자와 억제를 무력화하려는 자의 전쟁은 사활을 건 지구전(持久戰)이 될 것이다. 미중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도 미중 전쟁의 본질을 직시하고 장기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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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중국 핵 개발#중국 원자탄#미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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