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아성애증, 숨겨도 잡아낸다…기자가 ‘감별기기’ 직접 실험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4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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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난 여자 아이가 욕조에서 등에 비누칠을 해달라고 한다. 어린 딸이나 조카를 둔 평범한 남성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반면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소아성애증’ 환자에겐 흥분을 억누르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 아동 성폭력을 저지른 범죄자가 소아성애증 환자인지를 발기 여부로 가려낼 수 있는 기기가 최근 개발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음경변화 측정기기(Penile PlethysmoGraph·PPG)’다.

● “소아성애증, 숨겨도 잡아낸다”


아동 성범죄자가 재판에 넘겨진 뒤 검찰은 해당 범죄자가 소아성애증 환자로 의심되면 징역형과 별개로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나 치료감호를 청구한다. 범행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놓아주면 재범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6년에 검거된 13세 미만 성범죄자의 6%가 동종 범죄 전과자였다.

이 때부터 사법당국은 범죄자와 두뇌 싸움을 벌인다. 특정 범죄자가 소아성애증 환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주로 소아성애와 관련된 질문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점수로 매겨 소아성애증 환자인지를 판단하는데, 범죄자가 그 의도를 간파해 ‘모범답안’을 꾸며낼 수 있다. 성인과 아동의 사진을 섞어 범죄자에게 보여준 뒤 시선의 방향이나 응시 시간을 측정하는 기기가 있지만 정확도가 높지 않다.

국과수가 개발한 PPG는 소아성애증 환자를 가려낼 강력한 ‘무기’가 돼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범죄자가 검찰의 의도를 미리 알아도 속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식은 이렇다.

①아무 자극이 없는 상태로 음경의 둘레를 잰다. ②비키니를 입은 성인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 대상과의 성행위를 묘사한 시나리오를 들려준다. 이때 음경에 착용한 고무줄 모양의 PPG로 둘레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③비키니를 입은 사춘기 전 여자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소아성애증 환자라면 성적으로 흥분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들려준다. 이때도 PPG로 음경의 팽창 여부를 측정한다.

이런 과정이 3~4차례 반복된다. 만약 범죄자가 소아성애증 환자라면 음경이 ③의 경우에 일관되게 팽창한다. 성적 흥분에 따른 발기는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정신건강의학과 레이 블랜처드 교수가 PPG의 정확도를 검증해보니 소아성애자의 경우 ③의 경우에 음경이 팽창될 확률이 평범한 남성에 비해 25배 가량 높았다.

● 기자가 직접 실험해보니…

지난달 24일 기자는 강원 원주시 국과수에 방문해 PPG를 직접 시연해봤다. 국과수는 일반인 수십 명을 모집해 실험한 결과 자체 개발한 PPG의 특이도(소아성애증 환자가 아닌 사람을 ‘소아성애증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확률)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PPG의 민감도(소아성애증 환자를 소아성애증으로 판단하는 확률)는 피험자 모집이 어려워 아직 실험하지 못했다.

기자가 실험실에서 PPG를 착용한 채 시청각 자극을 기다리는 가운데 ‘과연 이걸로 소아성애증을 정확히 감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더 정확히는 ‘이렇게 긴장되는 상황에서 무슨 자극을 받든 음경의 둘레가 변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험실 옆방에선 국과수 법심리과 소속 연구원 2명과 동아일보 취재팀 2명이 기자의 음경 둘레 그래프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자극이 없는 상태로 5분이 지나자 모니터에 팬티만 입은 성인 남성의 사진이 나타났다. 스피커에선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이른 아침 당신은 공원에서 조깅하던 남성과 마주친다. 당신은 그를 따라 관목림으로 들어간다.” 이후엔 해당 남성과의 성적인 접촉을 묘사하는 시나리오가 1분 가량 이어졌다. 이후 비키니를 입은 성인 여성의 사진과 함께 유사한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다음은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였다. 팬티를 입은 남자 아이와 비키니를 입은 여자 아이의 사진이 각각 나타났다. 시나리오의 내용은 옆집에 사는 여자 아이를 돌보다가 잠을 재운다든지, 남자 아이와 레슬링을 하다가 우연히 성기에 손이 스쳤다는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주를 이뤘다. 이 같은 과정이 ‘성인 남녀, 남녀 아이’의 순서로 총 4차례 반복됐다.

실험은 30분 가량 걸렸다. 연구진은 중간에 피험자가 몸을 움직여 음경 둘레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거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부분은 제외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보정했다. 그 결과 기자는 자극의 대상이 성인 여성일 땐 음경 둘레가 평소보다 소폭 늘어난 반면 아이일 땐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성애 성향이 없다는 뜻이다.

● 까다로운 허가 절차… 도입 미뤄져

실험에 사용된 사진은 전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합성 사진이다. 모델의 인권과 초상권을 고려했다. 스피커로 들려주는 시나리오는 미국 사법당국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거의 그대로 썼다. 다만 국내 사정에 맞게 국문학과 교수들의 감수를 받아 각색했다. 사진은 합성 상태가 깔끔하지 않고 시나리오는 다소 어색한 기계음으로 들려준다. 의도한 부자연스러움이다. 이런 자극에도 성적으로 흥분한다면 정말 소아성애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과수가 개발한 PPG는 1년째 실제 아동 성범죄자에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PPG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로 분류됐다. 의료기기로 허가받으려면 시제품과 완제품 모두 제조·품질 관리기준(GMP) 인증을 받은 업체에서 제작해야 한다. 이 공정을 인정받는 데 비용만 약 1억 원이 든다. 국과수가 여러 업체를 찾아다녔지만 전부 “수익성이 낮다”며 거절 당했다.

의료기기 허가에 반드시 필요한 임상시험도 난항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아성애증(질병코드 F654)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연평균 7.4명 수준으로 극히 드물다. 임상시험 기준에 맞는 환자를 찾으려면 국립법무병원(공주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인 소아성애증 환자 중에서 모집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신이 구속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허가 절차가 극히 까다로워 사실상 어렵다.

국과수는 PPG를 의료기기가 아닌 진단에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보조기기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약처는 길병원 등이 도입한 IBM의 의료용 인공지능(AI) ‘왓슨’을 의료기기가 아닌 ‘의료용 정보 검색기’로 분류해 임상시험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PPG 개발을 맡은 홍현기 국과수 법심리과 연구원은 “PPG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임상 심리 전문가가 아동 성범죄자의 재범 우려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의료기기보다는 심리 평가도구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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