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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건네자 “카드 없으세요?” 툴툴… 동전 내면 ‘악당’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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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건네자 “카드 없으세요?” 툴툴… 동전 내면 ‘악당’ 취급

권기범기자 , 박광일기자 입력 2018-06-23 03:00수정 2018-06-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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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귀차니즘’ 확산… 가게서 푸대접

“5000원까지는 참을 만한데, 그 이상은 어휴….”

올 초 충남 지역의 모 편의점에서 일한 이모 씨(25·여)는 ‘종이컵 아저씨’를 잊지 못한다. 소주와 안줏거리를 잔뜩 집어온 이 아저씨는 물건값 3만 원 가운데 1만 원이 넘는 돈을 동전으로 냈다. 100원과 500원짜리 동전이 종이컵 두 개에 가득했다. 이 씨는 진땀을 흘리며 돈을 셌다. “빨리빨리 좀 하라”란 재촉에 울컥하기도 했다. 이 씨는 “현금을 내는 손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마는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다. 200원짜리 사탕 하나 사면서 1만 원짜리 지폐를 낸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편의점, 카페 등의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들은 현금, 그것도 동전으로 계산하는 손님을 ‘동전 빌런(villain·악당)’이라고 부른다. 미국 슈퍼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악당을 빗대 일하기 귀찮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비꼬는 것이다.

단순히 계산하기 어렵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현금 자체를 번거롭게 여기는 ‘현금 귀차니즘’ 증상이다. ‘귀찮다’란 말에 주의(主義)를 뜻하는 영어 접미사 ‘-ism(이즘)’을 붙여 만든 귀차니즘은 어떤 현상이 만연해 귀찮을 정도라는 뜻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현금 결제 비율은 2014년 17.0%에서 2016년 13.6%로 계속 줄고 있다. 신용카드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간편 결제서비스가 늘면서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나아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현금 귀차니즘인 셈이다.

신용카드 수수료나 세금이 아까워 현금 지불을 바라던 소규모 상점도 최근에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직장인 김모 씨(35)는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현금을 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은 “카드 없느냐”고 되물었다. 김 씨는 “일부러 현금을 가져갔는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택시에서 기본요금 3000원이 나와 5000원짜리 지폐를 냈다가 택시 운전사에게 “그냥 카드로 하시라”고 핀잔을 들었다는 승객도 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동전을 아이가 가게에 가져가면 “기특하다”고 칭찬받던 시대는 지났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조모 씨(25)는 “동전은 세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나중에 정산하다 틀릴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귀찮은 존재”라고 했다.

미취학 아동에게는 ‘돈=현금’이란 공식도 잘 먹히질 않는다. 워킹맘 박모 씨(39)는 7세 딸에게 경제관념을 알려준다며 “돈이 뭐냐”고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딸은 팔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었다. 식당에서 카드 결제하는 모습을 흉내 낸 것이다.

현금 귀차니즘이 업무 혁신을 불러오기도 한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매장 평균 현금 결제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올해 4월 ‘현금 거래 없는 매장’ 3곳을 시범 운영했다. 도입 50일 만에 3곳의 현금 결제율은 평균 0.2%까지 떨어졌다. 정산하는 데 드는 시간이 하루 평균 50분씩 절약됐다. 시범 매장 점장인 이상엽 씨(30)는 “정산할 때 100원, 200원이 빌까 걱정하는 직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현금 없는 매장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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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현금 두둑한 지갑 대신 카드 몇 장만 넣은 머니클립이 인기를 끌더니 간편 결제가 대중화되자 이마저도 사라지는 추세다. 현금 사용은 생소한 행동이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박광일 기자
#현금#귀차니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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