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8000만원인데 ‘0원’ 입력해 대출금리 올려… 못믿을 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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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시중銀 산정체계 검사 결과
소득-담보 있어도 ‘없다’로 처리… 가산금리 높게 책정 이자부담 늘려
전산시스템 무시 최고금리 적용도… 은행들 “고의 아닌 실수” 해명에도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방법 없어… 금감원, 산정내역서 의무 제공 추진

자영업자 김모 씨는 지난해 3월 한 시중은행에서 담보를 내고 3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책정된 금리는 연 8.6%로 한 해 내는 이자만 258만 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은행은 김 씨의 담보가 없다고 전산시스템에 입력해 대출금리 중 가산금리를 구성하는 항목인 ‘신용프리미엄’을 3.7%로 매겼다. 원래 김 씨의 담보로는 신용프리미엄이 1.0%에 불과해 실제 내야 할 이자는 연 5.9%가 맞다. 올해 5월까지 김 씨는 96만 원의 이자를 더 내고 있던 셈이다.

시중은행들이 이처럼 대출금리를 제멋대로 산정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지적이 계속된 가운데 이 같은 대출금리 산정 행태가 드러나면서 은행권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당 은행들은 금융감독원 검사가 진행되자 뒤늦게 부당하게 매긴 대출이자를 환급해 주기로 했다.

○ ‘소득 정보 적게 입력’ 다수 드러나

금감원은 올해 2, 3월 진행한 9개 은행(KB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NH농협 IBK기업 SC제일 한국씨티 부산은행)의 대출금리 산정 체계 검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검사 결과 9개 은행 모두 주먹구구식으로 금리를 매기거나 불합리한 근거로 대출자에게 더 높은 이자를 부과한 사례가 적발됐다.

한 은행에선 대출자의 소득 정보를 실제보다 적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처리해 이자를 부풀린 사례가 다수 드러났다. 연봉 8300만 원인 직장인 이모 씨는 2015년 이 은행에서 5000만 원을 빌렸다. 하지만 이 은행의 영업점에선 이 씨의 소득을 ‘0원’으로 입력해 대출 금리를 연 6.8%로 과도하게 물렸다. 이 씨는 지난해 대출을 다 갚을 때까지 50만 원의 이자를 부당하게 더 냈다.

전산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금리를 산정해 놓고도 임의로 최고금리를 물린 은행도 있었다. 자영업자 박모 씨는 올해 초 21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전산시스템에서는 금리가 연 9.68%로 나왔지만 해당 영업점은 임의로 기업대출 최고금리인 연 13%를 적용했다.

시장 상황이나 경기 변동에 따라 재산정해야 하는 가산금리 항목을 그대로 유지해 더 높은 이자를 물리거나 합당한 근거 없이 인상하는 은행도 많았다. 또 대출자가 소득 인상이나 신용등급 상승 등을 근거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 그동안 적용하던 우대금리를 슬그머니 축소한 사례도 적발됐다.

○ 은행들, 더 받은 이자 돌려주기로

이번 검사 결과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는 “예상 밖의 충격적인 실태”라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해당 은행들은 검사 과정에서 “고의가 아닌 실수”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출자가 먼저 자신의 대출금리 산정이 잘못됐는지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오승원 금감원 부원장보는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적용한 경우 은행들이 자체 조사를 통해 환급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소비자로선 통보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리 산정의 고의성 여부를 가려 제재에 나설 방침이다. 권창우 일반은행검사국장은 “대출금리 산정은 기본적으로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해 제재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고의적인 부당행위로 판정되면 제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대출금리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은행들이 대출금리 산정 내용을 소비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은행별 금리 비교 공시를 강화하는 한편 대출자의 신용 위험이 과도하게 평가돼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받는 사례가 포착되면 즉시 현장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대출금리#은행#이자부담#가산금리#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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