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ICAN 사무총장 “한반도 비핵화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15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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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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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나빴지만, 몇 달 전 북-미 양국이 핵 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던 상황보다는 훨씬 낫죠.”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의 베아트리세 핀 사무총장(36)은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합의문을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공식 출범한 ICAN은 세계 101개국의 468개 비정부기구(NGO)로 구성된 연합체다. 이 단체는 지난해 7월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개발·보유·사용 위협을 전면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메일 인터뷰해 통해ICAN을 이끌고 있는 핀 총장에게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가 가야할 길에 대해 들어봤다.

핀 총장은 여러 한반도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합의문에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북-미 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를 찾기도 했던 그는 “회담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인도주의에 입각한 핵무기 사용은 금지했어야 한다”며 “북한의 핵능력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한 공격이 발생하면 서울이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이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회담이 (외교적 접근법의) 시작점이라고 믿는다”며 협박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에 큰 의미를 뒀다. 특히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용감한 리더’로 높이 평가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치적 긴장감과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북-미 양측에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며 “평창 올림픽에 북한을 초청하는 등 그의 노력으로 북-미 정상회담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핀 총장은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유엔뿐 아니라 핵폐기를 검증할 수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등이 합의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한의 TPNW 가입이 시급하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조약은 핵무기 개발, 보유뿐만 아니라 핵사용 위협도 금지한다. 핀 총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TPNW 가입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해당 조약에 따라 미국이 제공하는 핵억지 전력도 공식적으로 거절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남북한과 일본, 미국 등 69개국은 TPNW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핀 총장은 “미국은 이 프로세스에 계속 반대해왔고, 미국의 동맹국들은 TPNW에 가입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말하는 CVID가 바로 TPNW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한의 TPNW 가입은 ICAN이 북-미 정상회담 전날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 5단계’의 일부기도 하다. 핵전문가, 국제 핵무기 관련 기구 및 외교관들의 의견을 토대로 만든 로드맵 5단계는 △핵무기 사용 시 발생하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인지하고 △남북한 모두 TPNW 가입해 핵무기를 거부하고 △정해진 시간 내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고 △북한, 미국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한 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는 것이다. 핀 총장은 “북-미 양국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감독 아래 비핵화가 진행될 때 CVID가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며 “5단계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막는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타진 중이라는 그는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비핵화 프로세스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비핵화의 민주화’를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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