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43〉오리엔탈리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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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명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1922년 10월부터 1923년 3월까지 중동과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쓴 일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 관한 부분이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중국인들이 모든 인종을 밀어내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자동인형 같다.” “중국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자식을 낳는 것에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남자들을 사로잡을 치명적인 매력이 여자들에게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폭력적인 시선으로 동양인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스트, 즉 인식의 전체주의자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사람이었다. 1933년, 미국 시민이 된 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미국 흑인들이 차별의 희생자로서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북부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프린스턴에 살면서 흑인들과 어울리며 인권운동에 적극 관여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를 가진 알토 메리언 앤더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호텔에서 쫓겨나자, 자신의 집에 머물게 배려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인종주의가 “백인들의 병”이라며 백인들을 몰아쳤다. 그래서 미국 연방수사국의 감시 대상이었다.

이렇게 상반된 것의 공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그를 지나치게 이상화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를 변호하자면, 그 일기는 인종주의가 미국과 독일을 광기로 몰아넣기 전인 1920년대 초반에 쓰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편견을 극복하듯이, 그도 자신이 갖고 있던 ‘백인의 병’을 극복했던 게 아닐까. 그러한 ‘변화’의 측면에서 그의 일기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것이 주는 상처와 모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오리엔탈리스트#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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