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기묘한 성적 욕망, 근대 조선을 휩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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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박차민정 지음/320쪽·1만6000원·현실문화

조선의 근대 신문에 등장한 최초의 ‘변태 성욕자’는 누구일까. 1924년 경기 시흥군 영등포면에 거주하던 29세 일본인 청년이다. 평소 남의 변소 문틈으로 고개를 넣고 음부를 쳐다보는 버릇이 있던 이 청년은 군수집 변소에 잠입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이다 발각돼 징역 4개월의 판결을 받았다(본보 1924년 5월 11일자 ‘변태성욕한 사개월을 불복’ 기사 참조).

1920, 30년대 조선은 성(性)에 대한 이야기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대의 성과학 지식이 ‘변태붐’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지상을 오르내렸다. 서구의 성과학 지식이 번역돼 들어오면서 ‘변태성욕’ ‘반음양’ ‘여장남자’ ‘동성연애’와 같은 말이 등장했다.

책은 1920, 30년대 본보를 비롯한 조선일보, 잡지 등 언론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다룬 ‘젠더 비순응자들’에 대해 분석했다. 기사의 논조를 분석하며 당대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조망한다. 저자는 “퀴어한 존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떻게 ‘정상적인 세계’의 경계를 상상해내는 과정과 나란히 발전했는가를 함께 살펴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각 장마다 당시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넘쳐나며 쉽게 읽힌다. 사건이 보도된 신문 기사 사진도 곳곳에 배치돼 이를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조선의 퀴어#박차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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